<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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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기록
그의 고백은 시종일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지만 그렇다고 악마처럼 교활하게 저지른 온갖 죄악이 사면되지는 않는다. 그는 정상이 아니다. 점잖은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마치 마법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듯이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므로 우리는 저자를 혐오하면서도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p.12 머리말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p.17
사랑하는 돌로레즈! 나는 너를 지켜주고 싶단다. 어린 여자애들은 석탄 창고나 뒷골목에서,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화창한 여름날 블루베리 숲에서도 온갖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으니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언제나 너를 지켜줄 거야. 네가 착하게 굴면 머지않아 법적인 보호자 자격도 받아낼 생각이다. 그렇지만 돌로레스 헤이즈, '음란하고 호색적인 동거 관계' 같은 말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해주는 이른바 법률 용어 따위는 잊어버리자. 나는 어린애한테 못된 짓을 하는 성범죄자도 아니고, 정신병자도 아니야. 강간범the rapist은 찰리홈스 같은 놈이고, 나는 치료사therapist란다. 띄어쓰기만 다르지만 크나큰 차이가 있지. 나는 네 아빠다, 로. P.238
일찍이 롤리타가 그늘과 어둠만 있는 험버랜드에 발을 들여놓은 까닭은 경솔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 이 바보는 내가 보여주려는 신기한 세계보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영화 나부랭이와 진저리가 나도록 다디단 사탕 따위를 더 좋아했다. 햄버거와 험버거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 틀림없이, 서슴없이 -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p.265
일이 끝나고, 완전히 끝나고,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울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동안 계속되었던 우울증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유익한 폭풍같은 흐느낌이었다. 그 무렵 그녀는 걸핏하면 우울해했다. 그런 일만 없었다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해였으련만! 그날 나는 열정에 사로잡혀 조급하고 무분별해진 상태에서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했던 어리석은 약속을 취소해버렸고, 그녀는 널브러져 울음을 터뜨렸고, 자신을 어루만지는 내 손을 꼬집었고, 나는 즐거워하며 웃었다. p.270
그때 나는 아이들로 빛깔을 표한한 발상은 이 작품을 공동집필한 클레어 퀼티와 비비언 다크블룸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한 대목에서 슬쩍 도용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일곱 빛깔 중에서도 특히 두 빛깔이-주황색은 끊임없이 안절부절못했고 초록색은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관객이 가득 들어찬 캄캄한 객석에서 엄마나 보호자를 보았는지 갑자기 방긋 웃었다-얄미울 만큼 사랑스러웠다는 사실도 기억에 남았다. p.353
"예전에 퀼티라는 남자를 짝사랑하지 않았니? 그리운 램스데일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던 그 시절에. 난 그렇게 아는데."
"뭐라고?" 표정이 돌변한 로가 쏘아붙였다. "내가 그 뚱뚱한 치과 의사를? 날 바람난 어떤 계집애랑 혼동하신 모양이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처럼 바람난 계집애들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만 나처럼 늙은 연인들은 너희의 님펫 시절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한단다. p.354
내가 이미 말했듯이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말문이 터지더니 물 흐르듯 술술 쏟아냈다. 내가 그렇게 미친 듯이 좋아했던 남자는 그 사람뿐이었어요. 그럼 딕은? 아, 딕은 양처럼 순한 사람이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만 그거랑은 달라요. 그럼 나는, 나는 처음부터 아무 의미도 없었니?
그러자 그녀는 마치 믿을 수 없는-그리고 좀 따분하고 혼란스럽고 쓸모없는-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듯한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벨벳 상의를 걸치고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이 남자, 이 서먹서먹하고 세련되고 호리호리하고 마흔 살 먹은 병약자가 그녀의 어린 육체를 모공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까지 샅샅이 알고 또 사랑한 줄은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안경 때문에 낯설어 보이는 연회색 눈동자가 우리의 불행한 로맨스를 잠시 회상하고 평가하다가 결국 가차없이 내던졌다. 마치 따분한 파티처럼, 마치 비 내리는 날 따분한 사람들만 잔뜩 모인 소풍처럼, 마치 따분한 연습처럼 마치 어린 시절의 추억에 말라붙은 작은 흙덩어리처럼. p.437
감히 단언하건대 진지한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이 발표한 책으로부터 끊임없이 위안을 받는다. 책은 마치 지하실 어딘가에 항상 켜두는 점화용 불씨와 같아서 작가의 가슴속에 있는 온도 조절기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즉시 작고 조용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친숙한 열기를 발산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언제든지 마음속에 불러낼 수 있는 책의 존재감, 책의 빛은 작가에게 한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작가가 예견했던 모양과 빛깔에 가깝게 완성된 책일수록 더욱더 풍요롭고 은은하게 빛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에서도 어떤 지점이랄까, 샛길이랄까, 아늑한 골짜기랄까, 아무튼 작가가 다른 부분보다 더 간절하게 떠올리고 더 큰 애정과 기쁨을 느끼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p. 507 작가의 말
나의 개인적 비극은, 물론 남들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내가 타고난 모국어, 즉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다. p.509 작가의 말
비비언 다크블룸은 알려진 대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철자 순서를 바꿔서 만든 이름이다. 텍스트 속에 잠입하는 나보코프 특유의 방식이다. 언제나 자기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서명을 새겨넣곤 했던 히치콕처럼 여성 작가로 분하여 작품 속에 등장한 나보코프! p.531 해설
따라서 '롤리타'는 최소한 두 번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한 번은 험버트의 목소리로, 다른 한 번은 나보코프의 목소리로. 실제로 나보코프는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아니면 읽고 또 읽고 또 읽든가요." 그것이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방법이고 '롤리타'도 예외가 아니다. p.535 해설
남의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다 - 소크라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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