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왕위주장자들::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을 욕망 '권력'
[연극] 왕위주장자들::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을 욕망 '권력'
'세종문화회관 입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4월 13일 화요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연하는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작 <왕위주장자들>을 단체관람했다. ‘왕위주장자들’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으로, 입센 작품 중 최고의 극적 완성도를 지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사실 노르웨이 문학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노르웨이가 우리나라와 동떨어져있는 북유럽에 위치해있기도 하고, 다른 국가에 비해 언어, 문화적인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현대 문화예술의 진흥에 역점을 두고 있는, 문화와 예술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국가다. 오랜 식민의 역사로 전통문화의 취약성을 안고 있는 노르웨이는 현대 문화예술분야의 활성을 위해 문화예술진흥부문에 국내총생산(GDP)의 3%나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르웨이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헨리크 입센’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근대 시민극과 현대의 사실주의극을 세우는데 공헌한 그는 ‘현대극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입센 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선진국 극장에서 가장 많이 공연 되는 희곡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다음을 잇는 사람이 바로 입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입센의 작품 중 11편이 무대에 올라 소개되었다.
이번 연극 ‘왕위주장자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입센의 작품이었다. 세계문학 전집에 포함되어있던 입센의 ‘인형의 집’을 희곡으로 읽어본 적이 있다. 입센의 ‘왕위주장자들’ 역시 희곡집으로 시중에 나와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원작을 번역하며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왕위주장자들’, 연극을 보기 전에 제목과 연극 포스터에서부터 피 튀기게 치열한 왕위쟁탈전이 펼쳐질 것을 예상해볼 수 있었다. 희곡 ‘인형의 집’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이번 연극을 보기 전, ‘헨리크 입센’의 또 다른 작품이라고 해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난투극이 펼쳐질 것인가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연극이 고전극이라는 것을 알고는 걱정을 조금 하기도 했다. 고전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지루할 것이라거나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몰고 다니지 않는가. 게다가 13세기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이라니, 나름 전공생이라고 공연을 보러가서 공연 내내 졸다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앞선 걱정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뒤에 더 이야기를 하겠지만, 공연은 생각보다 무척 현대적이었다. 이 희곡이 154년 전에 쓰였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헨리크 입센’의 <왕위주장자들> 공연장에 들어섰다.
<왕위주장자들>에는 호콘, 스쿨레, 니콜라스 주교, 이 세 명의 주요인물들이 등장한다. 극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은 모두 왕위를 추종하는 자들이며 각각 군주정, 귀족정, 종교정(政)을 대표한다.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한 국가의 매우 중대한 사항이다. 이 중대 사항을 놓고 벌이는 왕권과 귀족, 교회의 왕위쟁탈전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호콘은 자신이 왕이 되어야한다는 확신과 넘쳐흐르는 자신감을 가진 인물이다.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왕위 계승의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차있다. 호콘은 훌륭한 왕으로서 스쿨레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쿨레의 딸인 마르그레테와 결혼하고, 그의 작위를 공작으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스쿨레의 도움을 기대했던 호콘의 바람과는 달리, 스쿨레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왕위에 대한 미련과 야심이 부글부글 끓는다. 호콘이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왕국을 다스린다고 믿고 있는 스쿨레다. 실제로 그의 옥쇄도 그의 손아귀에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스스로가 왕이 되어야함을 호콘만큼 확신할 수 없다. 끝없이 스스로를 의심한다. 만일 자신이 왕국을 얻는다 해도 그건 온전히 자신이 왕국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이 된다한들 천평은 여전히 호콘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말하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전혀 없다. 이 인물이 더 비극적인 것은 그렇게 의심을 하면서도 왕위에 대한 욕망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 호콘과 스쿨레 사이에는 니콜라스 주교가 있다. 그는 스쿨레의 욕망과 의심을 더욱 부풀게 만드는 인물이다. 스쿨레에게 호콘이 왕위계승자로 오기 전, 다른 아이와 바꿔치기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이라도 호콘을 물리치고 왕이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왕위에 대한 욕망이 더더욱 부푸는 스쿨레이지만, 유일한 단서를 쥐고 있던 니콜라스 주교가 죽게 됨으로써 진실은 묻히고 만다. 니콜라스 주교 역시 왕위를 추종하는 자이다. 성직자의 이미지란 본래 겸손하고, 선한 모습이지만, 니콜라스는 그렇지 않다. 성직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고, 교사하는 추악한 악마가 된 것 이다. 니콜라스 주교는 본래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왕위 대신에 왕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성직자를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왕위에 대한 욕망은 존재했으며, 호콘이나 스쿨레 둘 중 한 사람이 왕위를 얻게 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 그 둘의 사이의 불화를 부추기고, 결국 그 두 사람이 서로 대치하다가 한쪽이 파멸을 하도록 만들게 된다. 이 극은 이 세 인물이 왕위 계승을 놓고 벌이는 근원적인 갈등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 혹여 졸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우려와는 달리, 공연은 무척 재밌었다. 고전극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현대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투와 대사는 꽤나 고전극스러웠지만,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던 의상이라던지, 그들의 성격, 작품의 주제와 갈등의 소재, 그리고 중간중간의 웃음포인트들이 매우 현대적이었다. 특히나 권력의 투쟁에 대한 극의 주제는 상당히 보편적이었고,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을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였다. 각 세 인물들은 권력의 욕심에 차 있는 현대의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야 함에 확신이 차있지만, 넘쳐흐르는 확신과 자신감에 때로는 오만하고 거만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 스스로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의심과 불확실성 때문에 스스로가 파멸에 이르러 뒤에서 누군가의 조종과 회유에 끌려다니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지도자들 사이와 여론을 이간질 하는 사람들. 모두들 현대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대선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이 연극 <왕위주장자들>을 보면서 과연 올바른 지도자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권력을 손에 쥐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됐다. 비록 그 해답을 연극 안에서 찾을 수는 없었지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권력 다툼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낸 헨리크 입센의 작품에 한번 더 감탄하며 많은 깨달음과 생각을 안고 돌아갈 수 있었다. 세 인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스쿨레 백작이었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과 자질은 충분했음에도 결국 호콘에게 밀려날 수 밖에 없던 그가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고, 계속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스쿨레 백작을 보면서 왜인지 모르게 낮은 자존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크면서도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과 닮아있는 듯 해 딱한 마음이 들었다.
‘커튼콜장면’
‘관객과의 대화‘
연극이 끝난 후에는, 연출가님과 극의 주요 인물이었던 세 배우님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연극만 봐서는 그 연극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집에 와서 그 연극에 대한 기삿거리를 찾아보고서야 ‘아아 그때 그 장면이 이런 것을 의미하는구나.’ 하고 깨달을 때도 있고, 도대체 그 상황에서 왜 그 소품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 그 궁금증을 결국 풀지 못한 채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연극을 보는 내내 가려웠던 그런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해 주는 시간이었다. 극 중 왜 니콜라스 주교만 유독 희화화가 되어 관객들을 웃기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질문을 드렸다. 무게감 있는 호콘과 스쿨레와는 다르게 왜 주교만이 캐릭터가 조금 가벼울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연출가님의 말에 의하면, 주교라는 캐릭터 자체가 재미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캐릭터 설정을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연극에서 비록 일찍 죽음을 맞이했지만, 초반부의 니콜라스 주교는 극을 지루하지 않게 잡아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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