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국립극단, 메디아:: 헬리오스의 수레마차는 어디갔나
[연극] 국립극단, 메디아:: 헬리오스의 수레마차는 어디갔나
자그마치 이천년전의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인 '메디아'지만, 내게 그렇게 낯선 작품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 수강했던 미네르바 강의에서 이 작품을 한번 다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을 가지고 각색을 해서 연극을 꾸몄는데 내가 바로 이 메디아 역할을 맡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다고 했을때 무척 관심이 있었고, 네이버 책문화에서 하루 공연 전석을 빌려 무료로 관극할 수 있는 표를 풀었던 이벤트에 당첨되지 못해 무척 아쉬워해 하고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운좋게 학교에서 무료로 다같이 관극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연극을 보고 왔다!!!
무대는 방 형식으로 꾸며져있었다. 그렇게 특별하다고 느낄만한 무대 소품은 없었고 무대가 그렇게 넓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상깊었던 점은 그 넓지도 않은 방에서 15명 정도의 코러스 군단들이 집단연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다같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린다거나 의자를 끌어 동시에 앞으로 나오고, 동시에 입을 맞춰 한 소리를 내는 장면들은 충분히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나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코러스 배우들의 합이 좀 더 잘 맞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동시에 정확하게 똑같은 동작을 했어야하는 부분에서 정말 완벽하게 칼같은 집단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했고, 모두 한 소리를 낼때의 소리가 웅얼거려 메세지 전달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디아役의 배우 '이혜영'
솔직히 연극 <메디아>는 배우 이혜영이 '하드캐리'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모든 배우분들과 연출가들이 혼신을 다해 꾸린 연극이겠지만, 연극이 끝나고 내 기억에 남은건 이혜영의 미친 메디아뿐이었다. 그만큼 이 극의 메디아는 강렬했다. 그야말로 메디아는 악녀 그 자체였다. 연극을 보는 내내 무대 위의 메디아를 보며 속으로 '이런 미친년... 저런 나쁜년...'을 연신 외쳤을 정도니까.
연극을 다 본 후 집에 돌아와서 작년에 미네르바 수업때 내가 작성한 레포트와 연극 대본을 한번 찾아보고 놀랐다. 오늘 내가 느낀 메디아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악녀였지만 예전에 내가 작성했던 보고서에서 나는 그런 메디아를 옹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메데이아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나 비극 ‘메데이아’ 가 창작된 시대는 고대 그리스였고, ‘메데이아’ 작품 또한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메데이아의 행동은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아아, 아버지! 아아, 조국이여! 수치가 밀려오네요./ 아아 이러자고, 오빠까지 죽이며 고향과 조국을 배신했단 말인가!(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165~167행)'
내가 작성했던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다.
'미네르바 보고서 - 메데이아 질문지'
'메데이아 모의재판 연극 대본'
헝가리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
생각해 보니 연극에는 메디아가 분노하게된 자세한 이유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없다. 메디아를 그저 조금의 연민도 들지 않는 악녀로만 묘사할 뿐이다. 연출가 '로버트 알폴디'는 관객들에게 메디아가 그렇게 비춰지길 바랐던것 같다. 그런 연출가 알폴디의 의도는 극의 결말까지도 바꿔놓았다. 원작에서 메디아는 헬리오스 신의 수레마차를 타고 날아간다. 성공적인 복수를 끝낸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그려놓음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저항하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페미니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폰디의 연출에서 메디아는 이아손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만다.
사실 나는 이런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원작을 이미 알고 있던 내가 이 연극에서 기대한 장면이 세가지 정도 있었는데, 첫번째는 글라우케와 크레온의 살이 녹는 죽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것이었다. 하지만 글라우케라는 등장인물 자체가 이 극에 존재하지 않아 이 부분을 볼 수는 없었다. 두번째는 메디아가 자신의 아이들을 살해하는 장면, 이 부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충격적이었고 놀라웠던 장면이서 무척 좋았다. 세번째가 바로 메디아가 헬리오스의 불타는 태양마차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이었는데, 이 부분이 메디아가 죽는 장면으로 바뀌어서 결말부분에서 맥이 탁 빠지는,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정말 기대했던지라 더 아쉬웠고, 고대 그리스 그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도 살려주었던 메디아를 21세기 현대에서 그것도 남성의 손에 처참히 죽게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표방하고 주장하는 요즘시대에 맞지않는 너무나도 가부장적인 해석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알폰디의 연출로 메디아가 한낱 사랑에 빠져 복수심에 사로잡혀버린 미친 여자로 전락해 버린것만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차라리 메디아와 이아손 모두 죽음에 이르게하는것은 어땠을까.
하지만 이런 알폴디 연출가의 색다른 시각에서 재탄생한 메디아의 연출도 나름 색다르고 흥미로웠기는 하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연출 부분은 메디아의 시대적 배경이 고대 그리스인데도 불구하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들것을 들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코러스 군단들의 복장이나 배우들의 대사들이 꽤나 현대적이라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이런 현대적인 각색과 연출이 원작인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와 차별화 되어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것 같다.
모처럼 이렇게 좋은 연극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해준 학교와 명동예술극장에 깊은 감사를! :)
+ 뒤늦게 프로그램북을 다시 천천히 읽어봤다.
연출가 인터뷰 中
' 자식을 살해하는 것은 결코 논리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어요! ···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규칙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 저는 원초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메디아 또한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 그 사랑이 강박적인 감정이 될 수는 있지요. ···
어떤 논리적인 결말을 맺으려던 것은 아니에요. 분명하게 말할수 있는 것은 열정이나 사랑 때문에 자식을 살해한 사람은 그 후에는 실제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메디아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로 볼 수 있어요. '
이렇게 연출가의 의도를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싶고 내가 강박의 감정에 사로잡힌 극중 메디아를 너무 악하게만 본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메디아의 죽음이 자연스러운 일로 볼 수 있다는 연출가의 말이 참 인상깊었다.
그러나 연출가의 의도를 이렇게 들어보았음에도 메디아가 죽지 않았어야했다는 내 생각은 변함없다. 오히려 이아손이 스스로 자결을 했으면 했지 메디아는 그렇게 쉽게 죽을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랄까. 어쩌면 나는 마차 안에서 성공적인 복수에 대한 환희와 아이들을 스스로 죽였다는 것에 대한 고통이 공존하면서 혼란에 미쳐가는 광기어린 메디아를 보고싶었던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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