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표백>, 장강명
저자 장강명
출판 한겨례출판
발행 2011.07.22
표백:: 젊은 세대의 설움
댓글부대 이후 두번째로 읽게된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이다. 이번에도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으로 20대의 설움을 그려냈는지 도저히 40대 아저씨가 표현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소설의 내용, 20대들이 현실에서 쓰고 있는 사실적인 말투나, 표현들, 이번에도 사회 현실을 반영한 탄탄한 자료조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꿈 없는 표백세대의 주인공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린다.
이십대 초반인 나지만, 그래도 같은 20대라는 나이를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공감가는 구절이 되게 많았다. 예로, 주인공이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뒷풀이 자리에서 취직한 선배에게 대드는 대목과, 큰 꿈 없는 세대에 대한 설명 부분들.
나는 처음부터 이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같은 때 취직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안다. 취직한 사람들의 사람들의 요령을 배우자는 취지도 좋다. 그러나 취직한 게 존경할 일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취업 선배들'은 그런 존경을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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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청년들한테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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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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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오륙십 대의 나이 든 사람들이야말로 인생 저물어 가는데 잃을 게 얼마나 많은데.... 일례로 시간을 2,3년만 잃어버리면 H그룹 같은 데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잖아요. 나이 제한을 넘겼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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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요, 젊은이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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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 본문 中
주인공을 보고 너무 비관적이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난 저렇게 기성세대에게 툭 까놓고 자기 생각을 말하며 대드는 주인공의 패기가 부러웠다. 저런 생각을 품고있어도 막상 앞에 서면 알랑대며 자기들 잇속을 챙기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야망있고 패기 넘치던 주인공도 결국엔 고시원을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7급공무원이 된다. 평범한 대학생 하나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게 현실인거다.
'큰 꿈 없는 세대'를 만드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한국이 선진국이 되어가면서 사회체제가 안정되고 1970년대나 80년대처럼 파이가 많이 남지 않았다. 각 조직의 관료화가 완료돼 조직 내 세대교체가 쉽지 않아졌고, 새로운 일자리는 대개 서비스업에서 만들어지는 단순 노동거리다. 대단치도 않은 눈앞의 과실을 따기 위해 온 힘을 쏟다 보면 그만큼 생각의 폭이나 인물의 그릇이 잘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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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 능통한 세대 라는 주장은 칭얼거림에 불과하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과거 세대도 그들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썩 잘했다.
게다가 과거 세대들은 민주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정착, 근대 체제로의 편입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도 이미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양성 평등이나 환경문제와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소주제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그다음에 나오게 될 이슈들은 한 세대의 과업이나 종교의 대용품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리라. 성적 소수자 보호, 동물 보호, 장애인 인권 문제, 소비자 운동, 저개발국 원조 프로그램 등등.
그래서 이 세대는 큰 꿈을 가질 수 없게 됐다.
- 본문 中
예전에 우리과 교수님 한 분과 강의 쫑파티를 하며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세상이 이렇게나 발전해서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인데, 너희네들은 왜 이렇게 나태하냐. 지금 힘든건 힘든것도 아니다. 우리때는 말이야~.' 하면서 늘어놓는, 소위 꼰대라 칭하는 기성세대 말투. 교수님은 이런 말들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세상이 이렇게나 발전됐기 때문에 청년들이 힘든거라고. 예전 세대보다 빡빡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요즘 청년들을 본인은 오히려 더 존경한다고 하셨다. 과거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한했다. 개발되지 않은 분야도 무궁무진했고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도 않았다. 선진국이 닦아놓은 길을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성공하는 시대였다. 성공, 자수성가, 개천에서 용나다 라는 말들도 낯설지가 않았다고한다.
그런데 현재는 어떠한가. 자수성가? 개천의 용? 뉴스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빈부격차는 이미 벌려질대로 벌려졌고, 사교육의 폐지? 개나 주라하자. 태어날때부터 이미 출발선이 같은 선상에 놓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추월도 말처럼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청년 실업률 10.7%, 청년 실업자수 100만명. 틀이 짜여진 이미 완벽한 시대에서 청년들은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들다. 이 시대 청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무얼 시도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나름 공감도 많이 되고 생각할거리도 많은 소설이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기존의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으로써 세상을 바꾸고자했다. 그러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서도 아니다. 자살할 이유가 없는 완벽한 위치에 섰을때 그들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단지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자신들의 자살선언 운동을 널리 알리고 부추기기 위해. 자살선언이란 자극적인 소재는 분명 신선했지만, 그들이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좀 더 납득이 될만한 명확한 이유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자살만이 정말 최선의 방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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