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1-13] 나홀로 후쿠오카 2박3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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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의 투어를 마치고, 저녁도 먹고 쇼핑도 할 겸해서 지하철 타고 텐진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였던 춤추는 남정네들. 이게 바로 일본의 길거리 문화인가 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젊은 여자들이 이 그룹을 에워싸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길래 나도 그 무리에 껴서 함께 찍어봤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직캠을 찍고 있는 여자도 있어서 혹시 아이돌 그룹인가도 싶었는데, 아이돌 치고는 뭔가 다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는 즉석에서 소소한 팬미팅까지 가지기도 했다. 팬 문화는 일본을 따라잡긴 힘들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우리나라 보이그룹들, 하다못해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어린 소년들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역시 우리나라 아이돌이 최고야.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STAR☆PRINCE라는 이름을 가진 그룹이었다. 방송 출연도 종종 나오지만 그렇다고 메이저급은 아닌 모양인데 어느 정도 팬층이 두터운 마이너 그룹인가 보다. 유튜브에서 저 곡의 뮤직비디오 영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랑이 시작되기 3초 전이라는 제목의 곡이었다. 신기했다.
이 뒤편으로 케고 신사와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버스킹이 한참이었다.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케고신사와 케고공원
그리고 지나가며 본 포장마차들
길거리 음식들을 보니 배가 고파져 얼른 식당을 찾았다.
투어가 끝날 때쯤 가이드님이 알려준 라멘집인 텐진의 '타이호 라멘'이었다. 후쿠오카 라멘으로는 이치란 라멘, 신신 라멘 등이 유명했지만, 난 왠지 남들이 다 먹는 거 말고 다른 게 끌렸다. 그러다 가이드님 설명을 듣고 옳다구나 하고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쿠오카에서 무려 60년이라는 전통을 갖고 있는 이 타이호 라멘은 후쿠오카에만 본점과 체인점을 두고 있는 곳이며, 돈코츠 라멘의 정석이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는 맛이라고 한다. 내가 먹은 것은 제일 기본이었던 A, 680엔이었다. 배가 고팠던 건지 아님 엄청 맛있었던 건지, 저기에 130엔으로 면을 더 추가해 먹었다. 저렴한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무척 맛있어서 만족했던 저녁이었다.
내 옆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나한테 어디서 왔는지, 왜 혼자 왔는지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관심을 가졌다. 내 영어를 가지고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 친구는 정말 영어를 못했다. 오죽했으면 나한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고 싶어서 일어-영어 번역기를 사용해가며 물어봤을까. 라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영어도, 일본어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식사는 끝난 것 같은데 한참을 스마트폰으로 번역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걸 슬쩍 보게 됐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할까 궁금했는데. 그렇게 한참 고민하며 만든 문장이 시간이 있으면 자기가 술을 살 테니 나가서 데이트 하자는 내용이었다. 아니 도대체 말도 안 통하는 이 낯선 여자와 무슨 대화를 하고 싶었던 걸까. 미안하다고 거절하니 멋쩍게 웃으며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 또한 재밌는 경험이었다. 일본 남자들은 꽤 적극적이구나..!
저녁을 다 먹고, 텐진 파르코 백화점의 러쉬에서 3500엔을 썼다. 그냥 카드로 계산할걸 무슨 생각으로 내가 현금을 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선 드러그스토어인 다이고쿠와 코스모스에서 내일 뭘 사면 좋을지 둘러보며 아이쇼핑을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정말 아기자기한 술집!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틀은 일본 방송. 우리나라로 치면 생방송 오늘아침 같은 프로그램인 듯했다. 기상 정보를 저렇게 깜찍하게 알려주다니. 그리고 오른쪽은 3년간 200회 이상 공연을 했다는 테니스의 왕자 뮤지컬 주인공 배우 소개였다. 이 배우가 이번엔 영화 촬영에 돌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상을 딱 보자마자 테니스의 왕자라는걸 눈치챘다. 오랜만이군!
이 날도 역시 일찍 일어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늦장을 부리다 보니 일정을 소화하려면 바로 체크아웃하고 나와야 했다. 짐을 가지고 나와 텐진 역으로 가 코인락커를 찾았다. 이게 정말 문제였다. 개찰구 바로 옆에 널린게 코인락커였는데 나는 애먼 곳에서 코인락커를 한참 동안이나 찾았고, 그게 시간을 엄청 잡아먹었다. 게다가 이게 어디 있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해 놓지도 못해, 공항 가는 길에 정말 땀을 삐질삐질 흘렸더랬지.
아무튼 짐을 보관하고, 가벼운 몸으로 하코자키미야마에 역에 도착했다. 일단 배고파서 연유 빵이 유명하다는 나카타 빵집에 들어갔다.
유명하다는 건 분명 연유 빵이라고 했는데... 내가 먹게된 건 명란 바게트였다. 도착했을 때가 10시였는데, 이때는 연유빵이 아직 안 나왔다고 했다. 현지인들에게 더 유명한 빵집이라 가게 점원 분들이 영어를 잘 못하셔서 고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 실력을 총동원해 '코코데노 남바완와 난지카라...' 라고 말하니 다행히 알아들으셨는지 11시라고 손가락으로 알려주셨다! 그래서 일단 배라도 채울 겸 명란 바게트를 먹었는데, 이것도 역시 맛있었다. 앉아서 먹으면 커피도 무료로 마실 수가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하코자키 궁의 수국 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신사 앞에서 현지인 분들께 부탁해 사진도 찍었다.
오전 시간이라 매우 한적했던 하코자키.
하코자키 궁 안에서 본 800년이나 된 거목
수국 축제가 있다는 화원의 입구
수국 축제는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열리고 있었다. 입장료는 300엔.
5월이 장미의 계절이었다면, 6월은 수국의 계절인가 보다. 수국이 참 예쁘게 피었다. 동그랗게 모여있는 모양이 참 재미나고 매력 있다. 사실 시내 곳곳에서도 수국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이곳을 굳이 올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온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길지 않은 여행기간 동안 동선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이곳은 제외했어야 했다. 근처에 있는 곳이라면 가볍게 산책 나오기 좋겠지만, 굳이 수국 축제를 보기 위해서 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뭐 같은 기간 동안 바로 근처의 정원에서도 백합 축제를 하고 있어 함께 구경하면 꽃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수국만 보고 왔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왔나 보다. 저게 유치원 원복인 모양인데 저 빨간 모자가 너무 귀여웠다. 애들끼리 손 꼭 붙잡고 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울트라 대왕 수국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또 다른 어린이집 아이들. 옆에서 나도 핸드폰을 들고 사진 찍으면서 눈빛으로 아이들 좀 찍어도 되냐는 사인을 보냈는데, 사진 찍고 있는 선생님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초상권의 주인은 저 애들일 텐데...!
구경을 하고 나오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그래서 연유 식빵을 먹기 위해 또다시 찾은 나카타 빵집. 여기서 살짝 실수가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연유 빵이라고 찾은 것과 비슷해 보이는 빵을 그걸로 착각해서 잘못 주문한 것이었다. 내가 잘못 주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빵을 자르고 있는 중이어서 그냥 이것과 연유빵 둘 다 사 먹었다. 연유 빵은 이따 더 출출해지면 먹으려고 포장을 해 보관했다. 가게 점원이 나 무슨 빵 중독자인 줄 알았을 거다. 큼직한 빵을 무려 3개나 사 먹다니!
다음 행선지인 롯폰마츠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또다시 들른 텐진! 이번엔 텐진미나미 역으로 갔다. 노선이 다르다고 지하철 외부와 내부가 모두 다른 분위기였다. 운영하는 회사가 다른 건가 이 롯폰마츠행 지하철은 초록 초록한 게 마치 애벌레 같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주의하라는 문구 같은데, 일본은 왜 이런 것조차도 이렇게 깜찍하게 만들어 놓는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버스랑 택시도 너무 귀엽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진 모르겠지만 그냥 무턱대고 귀여우니까 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빵을 그렇게 먹었어도 생각해둔 점심은 먹어야 했다. 롯폰마츠에 위치한 '우동비요리'라는 우동집이다.
내부가 깔끔했고, 사장님 역시 영어는 잘 못하시지만 엄청 친절했다.
내가 주문한 건 아보카도 붓카케라는 냉우동이었다. 항상 뜨거운 우동만 먹어봤지 차가운 우동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우동에 아보카도라니. 색달랐다. 그냥 이게 인기메뉴라길래 주문했는데, 아보카도를 평소에 좋아했던건 아니었다. 사실 아보카도를 생으로 먹어본 적은 한번도 없어서 아보카도가 정확히 무슨 맛이 나는 음식인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먹고 확실히 알게 됐다. 아보카도는 그냥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느끼한 아무 맛도 안 나는 맛이다ㅋㅋㅋㅋ 저 우동에 아보카도 간장을 부어 먹는 것인데, 생각보다는 맛있었다. 일단 면이 되게 쫄깃했다. 새우튀김도 맛있었고, 아보카도는 처음엔 괜찮았다가 거의 다 먹을 때쯤 살짝 느끼해져 물리는 느낌이 있었다.
면 음식은 대체로 거의 맛있으면서도 가성비가 좋은 음식인 것 같다. 혼자 먹기가 편하기도 하고. 이것도 710엔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일본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츠타야 서점에 방문했다. 롯폰마츠421이라는 건물 안에 있다. 학교에서 출판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찬양하다시피 했던 츠타야 서점. 우리나라 서점들이 본받아야 하고 그런 기업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곳일까 기대했는데, 기대에는 못 미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의 교보문고, 영풍문고들이랑 별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좀 색다른 게 있었다면, 서점에 책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이것저것들을 함께 팔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리서적 코너에서는 카레를, 농업이나 텃밭 서적 코너에서는 씨앗과 화분 등을 같이 매대에 올려놓고 팔고 있었다. 이외에도 믹서기나 칼을 팔거나 한편에서 그림을 전시해 놓는다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 역시도 그렇게까지 이색적이진 않았다. 이미 우리나라 서점에서도 여행도서 옆에서 여행사 홍보를 하고, 취미도서 근처에서 관련 물품들을 판매하는 걸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츠타야 서점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일본 한정 음료라길래 시켜본 '푸딩 아라모드 프라푸치노'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히 시켰다. 그냥 아메리카노나 마실걸.
너어어어무 달았다. 게다가 최악이었던 건 난 여기 앉아서 아까 남은 빵이랑 함께 먹을까 싶어 나카타 빵집에서 산 연유 빵과 함께 먹었는데. 극도의 단 맛 두 개가 동시에 입에 들어가니 혀가 저릿저릿한 느낌이었다. 단 걸 누구보다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난데도 불구하고, 그건 정말 못할 짓이었다.
아래층에 있던 마트에서 발견한 신기한 도구. 여기에 있는 걸 뽑아서 장바구니를 올려놓고 장을 보는 거다. 역시 일본은 초고령화 국가라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다. 어르신 분들 장바구니 무거우면 들기 힘들기도 하고 거동도 불편하니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장바구니 없이도 지팡이 대용으로 짚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2시에 쇼핑할 것이 많고 내 짐이 보관돼 있는 텐진으로 다시 이동했다. 생각해 보니 동선 낭비가 꽤 심했던 것 같다. 오호리공원-텐진(짐 보관)-하코자키미야마에-텐진(환승)-롯폰마츠-텐진(쇼핑,짐 찾기)-후쿠오카 공항이었는데, 나는 왜 굳이 일정을 이렇게 잡았던 것일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후쿠오카 자체가 매우 작아서 이동하는데 시간이 크게 소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텐진의 드러그스토어에서 한참을 구경하고 집어담고 빼고를 반복하다 결국 6000엔 정도를 면세받아서 카드로 긁었다. 산 것도 별로 없었는데... 그리고 로프트로 옮겨 다시 아이쇼핑을 시작했는데, 로프트는 정말 내 눈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 밖에 없었다. 이때 가져온 현금을 다 써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WPC의 양우산을 남은 현금 탈탈 털어 구매하고 그냥 눈으로만 담아왔다. 오른쪽 저 가방은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겠지 싶었는데, 없다. 없어.
아이쇼핑이 너무 재밌었는지 (원래는 쇼핑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늦게 짐을 찾게 됐다. 문제는 내가 짐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났다는 거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지, 텐진 역을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내가 짐을 보관했던 코인락커는 안 보이지 정말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 어떻게 짐을 간신히 찾고 후쿠오카 공항으로 행하는 길은 행여 비행기를 놓칠까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첫날 공항에서 내렸을 때 당연히 지하철을 타고 다녔던지라 버스 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텐진에서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 가는 건 버스가 훨씬 더 빨랐다는 것을 알고 지하철에서 또 한 번 멘붕을 겪었다.
그리고 국내선-국제선 이동하는 버스에서 한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그 아주머니가 불안감을 더욱 심어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난 미친 듯이 달렸다! 비행기 출발 시간 40분 전에 정말 간신히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고를 수 있는 자리가 딱 두 자리 남았었으니 내가 거의 마지막이었던 듯.
그렇게 평안과 다사다난이 공존했던 홀로 떠난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이미 가 본 여행지를 그것도 국내도 아닌 해외를 계속 반복해서 가는 사람들이 사실은 이해가 안 됐었다. 그 돈이면 다른 여행지를 고를 수도 있을 텐데 왜 또 이미 경험한 곳을 가는 걸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좀 이해가 될 것 같다. 그때의 추억이 계속 생각나고 잊을 수 없어서 또 가는 사람들도, 알찬 여행이었음에도 뭔가가 아쉽고 다음번엔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무척 재밌고 힐링됐던 2박 3일이었지만, 분명히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돌아오면서 그때 이랬었으면 그랬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후쿠오카에 가게 된다면, 이걸 바탕으로 더 알차고 좋은 여행이 되도록 계획을 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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