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1-13] 나홀로 후쿠오카 2박3일 (1)
정확히 일주일 전에 충동적으로 일본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휴학은 했고, 딱히 해 놓은 건 없고 곧 친구들도 종강이라는데 이대로 시간만 흘려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여행에 같이 갈 사람을 찾는 것도 일이었기에 그냥 일단 비행기 표부터 끊고 부모님한테도 거의 통보식으로 말씀드렸다.
"엄마 아빠, 나 다음주에 혼자 일본 갔다 올게!!"
사전 구매 | |
항공권 | 133,205원 |
숙소 (오호리하우스) | 61,700원 |
1일 버스투어 | 52,000원 |
와이파이 도시락 | 9,600원 |
여행자 보험 | 4,310원 |
후쿠오카 지하철 2일권 | 7,301원 |
총 | 268,116원 |
* 환전은 2만엔 (217,332원)을 바꿔갔다. |
스무 살 넘어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다.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 정도는 친구들도 다들 한 번씩 방학 때 다녀오던데, 나는 돈이 없어서, 시간이 안 맞아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매번 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었는데 나는 여태껏 모아놓은 큰돈을 여행에 한 번에 쏟아붓는 것보다는 그냥 수중에 가지고 있는걸 훨씬 더 선호하는 타입인 듯했다. 여행을 갈까 하더라도 비용을 계산해보다 그냥 그 돈으로 고가의 전자기기나 옷을 하나 더 사야지 하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나의 해외 경험은 중학생 때 잠시 뉴질랜드에 홈스테이로 머물렀던 게 전부다. 하지만 (부모님껜 죄송하지만) 사실 기억도 잘 안 난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공항 가는 것부터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떨렸다.
체크인이 뭔지 수속은 어떻게 하고 면세품은 어디서 찾는 건지 블로그 글을 수십 개 읽으며 알아두려고 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죄다 쓸모가 없었다. 일단 도착해서 맞닥뜨리면 다 할 수 있는 것을 떠나기도 전에 뭘 그렇게 걱정했는지!
진에어에서 카톡이 오길래 전날에 모바일 체크인을 했다. 덕분에 짐 맡기는 데까지 5분도 안 걸린 듯. 지류 티켓은 받을 수 없었지만 편하긴 했다.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 걱정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끝이 났다.
뭔가를 할 틈 없이 이륙하고 착륙하고 도착해버렸다! 너무 짧은 비행에 해외여행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다.
후쿠오카 국제선 공항에서 미리 구매해둔 후쿠오카 지하철 2일권을 받고,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탔다.
그제야 일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일단 하늘부터가 미세먼지 가득 낀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지하철역 입구가 있었고, 바로 이틀간 머물 숙소가 있는 오호리 공원역으로 움직였다.
오호리 공원 역 앞!
체크인은 4시였고, 이때가 2시 반인가 그래서 점심이나 먹으려고 근처의 눈 여겨놓은 식당들을 찾아갔지만 다들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이 근방의 식당들은 대부분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이 아니면 장사를 아예 안 하는 것 같았다. 밥 먹으려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결국 포기함.
점심도 못 먹고 3시쯤에 체크인을 했다. 내가 묵을 곳은 '오호리 하우스' 라는 곳이었다. 체크인이랄 것도 없었다. 메일로 전 날에 우편함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그냥 그 안에 들어있는 열쇠를 사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메일로 내가 체크인을 좀 더 일찍 할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답장도 않고 '답장이 필요 없음' 버튼을 눌렀다고 해서 굉장히 기분이 언짢았는데, 도착해 보니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리셉션이 굳이 필요 없는 무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3일 동안 머무르면서 나는 이 '오호리 하우스' 에서 관리인을 비롯한 또 다른 투숙객 또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계속 변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건 분명했는데... 필요하다면 연락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딱히 불편함을 못 느껴 뭔가를 요구하거나 불편을 제기할 일이 없었다.
내가 머문 곳은 701호였다. 좁은 평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테이블, 의자, 침구, 헤어드라이기, 텔레비전, 냉장고,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옷장, 옷걸이, 가스레인지, 싱크대, 욕조, 욕실용품까지. 혼자 지내기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창도 통창이라 경치도 나쁘지 않았고, 주변이 그냥 일본인들 거주지라 되게 조용했다. 온수도 에어컨도 모두 다 잘 나왔다. 흠이 있다면, 수건을 숙박일 수만큼만 준다는 것, 하지만 난 여분 수건을 챙겨와서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 대신 칫솔 치약도 숙박일 수 만큼 제공된다. 그리고 화장실이 정말 좁다는 것. 키 큰 남자들은 많이 불편할 것 같긴 했지만, 나는 거기서 반신욕까지도 즐겼다ㅋㅋㅋ 무엇보다도 게스트 하우스도 아닌 곳에서 2박 3일에 6만원이라는 가격이 단점을 커버할 만한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가성비 최고.
1. 하카타나 텐진처럼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 싫다.
2. 잠만 자면 되니 좋은 서비스는 필요 없고, 가성비만 좋으면 됐다.
3. 사람을 대면하기 싫고 낯선 이와 어울리기 싫다.
라고 하면 이곳을 추천한다.
오호리 공원
첫 끼니부터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편의점 샌드위치와 밀크티를 사서 오호리 공원 벤치에 앉아 먹었다. 그 와중에 본 잉어들과 자라. 호수에 잉어뿐만 아니라 오리도 많고, 이름 모를 새들도 자라도 엄청 많았다. 공원이 크고 한적하니 좋았다. 남은 2일 아침마다 산책을 해야겠다 다짐했지만, 역시나 난 아침형 인간이 아닌지라 실패...
오호리 공원 내에 있는 후쿠오카시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했다. 시간이 4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마감이 5시 반이라 전체를 관람하지 못하고, 모던 앤드 컨템포러리 전시만 부분 관람했다. 금액은 200엔으로 무척 저렴했다.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앤디 워홀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기념품들은 역시나 죄다 비쌈.
이곳도 오호리 공원 내에 있다. "일본 정원" 이라는 곳으로 입장료는 300엔.
입장료를 내는데 직원 분이 나한테 고등학생이냐고 일본어로 물어봤다. 당황해서 이이에.. 다이가쿠세... 라고 말을 흐리니까 그제야 내가 외국인인걸 알고 영어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내가 일본인처럼 생긴 걸까. 일본어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배운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그 말을 알아듣고 대답까지 했다는 게 스스로가 기특했다ㅋㅋㅋ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곳이었지만, 규모가 매우 작아 한 바퀴 도는 데 20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실내에서 말차를 먹을 수도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간 날은 아쉽게도 휴무였다.
오호리 공원을 벗어나면서 보인 동상 하나. 일단 찍어둔 것인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히로타 고키라는 사람의 동상이었다. 왠지 교육자일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정치가다. 후쿠오카 출신의 총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야스쿠니 신사에서도 모셔지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을 굳이 자랑스럽다고 동네에 동상까지 세운 이유가 뭘까.
쭉 걷다 보니 후쿠오카 성터가 나왔다. 오르막길이긴 하지만 등산이라 말하긴 조금 민망할 정도의 언덕이다. 산책 삼아 오면 좋을 곳. 무엇보다도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강아지나 어린 자녀들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현지인들 몇몇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참 좋았다. 낮에는 좀 더운가 싶더니 오후 5-6시쯤 되니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저런 큼직한 뭉게구름을 볼 일이 많지 않은데 후쿠오카의 하늘은 매우 맑았다. 바로 옆이나 다름없는데 왜 중국발 미세먼지는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걸까. 이곳의 하늘은 뭔가 더 낮아 보였다. 구름이 매우 낮게 걸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없다 보니 셀카봉을 휘두르거나 삼각대 놓고 혼자 사진 찍기가 편했다. 천수대에 올라가 경치 감상을 하다가 내려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이때 한참 사진을 찍다 보니까 핸드폰 배터리가 닳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려가야지 하고 핸드폰을 보는데 배터리 1프로... 이러다 국제 미아가 되는 건가 싶었는데 워낙에 동네가 작고 내가 온 길이 어렵지 않아 그렇게 헤매진 않았다. 보조배터리를 끼우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도착한 곳은 근처의 스시쥬라쿠라는 초밥집이다. 일본은 스시지 하고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구글 리뷰에서 가성비가 좋다는 말을 들어 일단 들어갔는데, 아니 가성비가 대체 어디있는건가요. 스시 세트를 먹으려니까 기본이 4000엔, 5000엔 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많이 주지도 않음. 그래서 그나마 저렴해 보이는 3500엔짜리 특상지라시를 주문했다. 그냥 지라시도 있긴 했는데, 이왕 먹는 거 더 좋은걸 먹고 싶었다. 외국인은 나뿐인 것 같았다. 가게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는데 대부분 퇴근하고 저녁 먹는 사람들, 회식 술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와 대화했다. 아저씨가 먼저 나한테 중국인이냐고 물어봤다. 아니 난 한국인인데 도대체 왜 자꾸 나를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영어도 매우 잘하고 젠틀했다. 원래 도쿄에 있는 대학을 나와 생활하다가 직장이 후쿠오카로 옮겨져서 3년 전부터 후쿠오카에서 살았더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지금 자기가 소주를 시키면 몇 잔 줄 테니 마실 테냐고 물어봤는데 난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그건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 이미 술을 몇 잔 마신 상태라 소주를 시키면 혼자 다 마실 수 없을 것 같으니 안 시켜야겠다며 살짝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곳은 점심에 오면 훨씬 싸다고 점심에 오는 것을 추천해줬고, 내가 스시가 아닌 지라시를 시킨걸 보고 자기가 나를 위해 스시 3 피스 정도 주문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스시는 매우 먹고 싶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친절한 아저씨였다.
처음 나온 것을 보고 양이 매우 적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살짝 불만이 있어서였나 가격에 못 미치는 양과 맛이라고 생각하며 먹었다. 물론 음식 자체는 매우 맛있었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가게를 나오니 엄청 배불렀다. 의외로 양이 꽤 되는 듯했다. 원래 저녁을 먹고 야키토리까지 먹을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배불러서 야키토리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77번 버스를 타고 오호리 공원에서 후쿠오카 타워로 이동했다. 190엔을 냈다. 후쿠오카 타워 내부는 그냥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전망대들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야경에 크게 감명을 받거나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후쿠오카 타워는 그냥 겉에서만 바라봤다.
후쿠오카 타워 바로 앞에는 모모치 해변이 있다. 15분 정도만 일찍 와도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늦어 이미 해는 넘어간 상태였다. 마치 유럽 같은 분위기의 건물들이었다. 그래서 뭔가 좀 인위적인 느낌도 있었다. 이 날 하루 공항을 제외하고는 한국인들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다들 여기 와 있었나 보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어떻게 사진을 남길까 하다가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고 있는 일본 중학생들을 발견하곤 사진을 부탁했다. 그중 한 남학생이 '제가 찍어드릴게요! 어떻게 찍지?' 이러길래 순간 놀라서 '한국 분이세요?' 하고 물어봤다. 발음이 진짜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인은 아니고 그냥 한국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너무 신기했다. 분명 원어민급의 발음이었는데... 내가 양 엄지를 치켜들면서 '아나타노 칸코쿠고가 죠즈데스!!!" 라고 말하니 같이 있던 여중생들이 웃겼는지 꺄르르 거리며 자지러졌다. 남학생이 나한테도 '일본어 되게 잘하세요~' 라고 말했을 때, "코레가 젠부데스!" 라고 말하니 또다시 자지러지기도. 하긴 저 나이 때는 뭐든 즐거운 나이지. 사진을 찍어주면서 애들이 나한테 "키레이~ 카와이~"라고 칭찬해 줘서 기분이 좋았는데, 찍어준 사진들을 보니.... 이건 뭐지 싶었다ㅋㅋㅋㅋㅋ 아무튼 재밌는 경험이었다.
갈 때는 버스를 탔지만, 이제 왠지 지도 보는 것에 자신감이 붙어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글 맵스를 켜고 경로를 찍어 에어팟을 끼면 내비게이션처럼 방향을 알려준다. 이거 정말 신세계였다! 모모치 해변에서 힐튼 호텔과 돔 경기장을 지나 마크이즈 쇼핑몰이 보여 1층을 둘러보았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 몇 분 둘러보지도 못하고 나가야 했다. 그리고 작은 강을 따라 퇴근하는 일본인들을 따라 걸으며 나도 숙소로 돌아갔다. 걸어서 한 30분 정도 걸린 듯했다.
들어가기 전에 로손에서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사 들고 돌아갔다.
숙소 바로 앞 복도 전등이 저 상태였다.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단점... 갑자기 분위기를 호러로 만들어버렸다. 영화 기생충을 본지 얼마 되지 않아 기생충이 떠올랐다. 이것은 누군가 내게 보내는 신호인가.
쉬면서 보려고 넷플릭스로 아는형님을 다운받아 왔는데,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며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콘텐츠에 아따맘마와 도라에몽이 있길래 동심에 젖어 오랜만에 한번 볼까 하고 틀었다. 한국어 자막은 지원 안 함. 그래서 일본어 자막을 틀어놓고 봤는데, 신기한 건 내용의 70퍼센트 이상을 내가 다 이해했다는 거다!!!! 물론 내가 한자와 가타카나를 읽을 줄 알아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만 언어 공부하면 진짜 즐거울 거 같다. 러시아어도 이렇게만 공부하면 일취월장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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