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보 Trumbo, 2015
트럼보 Trumbo, 2015
★★★◐☆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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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포스터와 영화 제목을 보고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영화 초장에 그만 볼까 고민을 잠깐 했다. 정치, 역사를 다룬 시대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결국엔 끝까지 다 봤다. 우려와 달리 정치 관련 이야기가 별로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의문이 들기도 했던 영화다.
1940년 냉전 시기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실존인물인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는 당시 공산당원이었다. 트럼보는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우드에서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명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트럼보는 저렴한 가격에 다작을 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진 '로마의 휴일'과 '스파르타쿠스', '브레이브 원' 등을 써내게 된다. 그리고 가명으로 써낸 두 작품이 마치 영화처럼 아카데미 상을 받게 되고, 트럼보는 사실상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유명무실했고 의미 없는 광풍에 불과했다는 점을 꼬집으며 블랙리스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희생당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정부의 억압과 규제를 받던 한 예술가의 통쾌한 승리' 정도가 되겠다.
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고, 트럼보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영화 같다. 그러나 내가 의문이 들었던건 과연 미정부에서 아무 이유 없이 트럼보를 블랙리스트에 세웠을까 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트럼보는 그저 신념이 공산주의이고 공산당원들과 모임 몇 번 갖고 영화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소극적인 공산주의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가 소극적인, 이념만 공산주의자였다면 굳이 정부에서 그렇게까지 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찾아보니 트럼보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다. 스탈린주의자에 가까웠으며 죽을 때 까지도 자신의 사상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보가 6.25 때의 북의 남침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 물론 그 블랙리스트로 희생 당한 억울한 예술인들이 분명 존재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유에서라도 자유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자유와 표현을 억압하고 제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국가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또 영화라는 게 원체 선동하기도 선동당하기도 쉬운 매체이다 보니 그런 위험인물에 대한 조치가 내려질 필요는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정부의 입장이었다 해도 그랬을 것 같다. 게다가 정말 아이러니한 건 지금의 트럼보를 있게 만든 수작들이 대부분 블랙리스트 이후에 집필한 공산주의 색채를 전부 없앤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없었다면 공산주의에 대한 국가의 제재가 없었다면 트럼보는 '로마의 휴일' 같은 작품을 낼 수 있었을까.
트럼보의 입장으로만 편향된 영화였던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자신의 딸 아이에게 트럼보는 공산주의가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에게 대가 없이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것이긴 하지만 정치와 사상이라는 게 사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선한 게 공산주의고 악한 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예술이든 뭐든 정치와 언론이 끼면 판이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까지 못해 안달일까. 사상을 떠나서 세력을 잡은 기득권은 다 똑같다고 느껴진다. 그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반대 세력에게 '악마'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편가르기를 하는 건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런 의미에서 그걸 깨버린 트럼보는 대단했다. 천재는 역시 천재였다.
기록
2019.05.15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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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좋아하는 영화를 2번, 3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그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프랑수아 롤랑 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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