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를 찍자!
★★★★★(5/5)
나의 생각
1.
일드는 중학생때 한동안 빠졌다가 그 뒤로 본 적이 없었는데 왓챠에서 예상 별점이 무려 4.9라고 자꾸 뜨길래 도대체 이게 뭔데!! 싶어서 보게 됐다. 역시 취향저격, 인생 일드 등극이다. 10부작인게 아쉬울 정도로 너무 재밌고 따뜻했다. 왓챠 알고리즘 칭찬해ㅎㅎ 일본판 미생이라고 하는데 글쎄, 미생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정감있고 밝고 상큼하다. 개인적으로 미생 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변호사, 판검사, 의사, 교사, 경찰 이런 뻔한 직업 이야기 말고 다양한 분야의 직장생활 이야길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주말 연속극에나 나올 법한 대기업 식품회사의 본부장님 팀장님 이런거 말고 '중쇄를 찍자!' 처럼 그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
전직 유도 국가대표 출신인 쿠로사와 코코로가 만화를 좋아한다는 패기 하나로 주간 바이브스 만화 편집부 신입으로 들어와 동료들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처음 1화를 보고는 코코로의 부담스러운 에너지와 오버액션에 그만 볼까도 생각했다. 일드 특유의 오버스러움을 잠시 잊고있었다. 아, 일드 특유의 매 회차 마다 빠지지 않는 감동 요소도. 하지만 모든 회차를 다 보고는 그런 코코로의 밝은 에너지와 기운이 도리어 부러워졌다. 나도 사람들에게 저렇게 밝은 기운을 전해주는 파이팅 넘치는 사람이 언젠가 되었으면. 사실 드라마를 볼 때 주연 배우들의 외모를, 특히 여주인공의 외모를 많이 타는 편이다. 첫 화에서 본 쿠로사와 코코코는 그닥 끌리지 않았다. 예쁘지도 않고 매력도 없어 보였는데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다양한 표정과 특유의 맹한 느낌이 너무 사랑스럽다. 극 중 새끼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별명인듯, 쿠로사와 코코로 그냥 그 자체.
3.
제일 기억에 남는 내용은 단연 5화 바이브스 회장님 이야기다. 운을 모으라던 회장님의 철학. "거스름돈을 기부함에 넣고 휴지를 줍고 욕심부리지않고 사는 삶 그게 운을 모으는 일. 어디서 이기고 싶은가에 달렸지. 운을 잘 써야 해. 인생의 어디서 이기고 싶은가를 스스로 정해라. 나는 내 일에서 이기고 싶었다." 라고 말하며 회장님은 무려 로또 1등 종이를 손녀의 색종이로 주었다..고한다..ㅋㅋㅋㅋㅋ 사사로운 운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히 내 할일을 하면서 선행을 베풀면 언젠가 나에게도 모아온 운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싶다. 작은 운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경품 혹은 이벤트 당첨이나 내가 놓쳤던 작은 기회 같은 것들. 다 언젠가 더 큰 무언가를 터뜨리기 위해 축적해 놓는 운들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착한 일 많이 해야지. 난 큰 일을 해낼 사람이니까!! 회장님 이야기와 함께 나온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라는 시도 너무 좋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저렇게 살아갈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런 시를 읽는 것 자체가 마음에 위안을 주는 듯 하다.
4.
5화 뿐만 아니라 2화 7화, 모든 에피소드들이 다 소중했다. 코코로를 만나 성장하는 2화의 영업부 코이즈미의 이야기는 훗날 나도 입사 후 의욕을 상실하게 되거나 나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느껴질 때 한 번쯤 다시 보면 좋을 에피소드였고, 7화 만화가를 꿈꾸며 20년이라는 세월을 문하생으로 보낸 누마타의 이야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벌써 마흔이 됐어요. 스무살 때부터 시작해 그 두 배의 세월이 지났어요.
그 시간동안 제대로 맞서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와버렸네요.
언젠가 인정받는 날이 올거다,
계속 그렇게.. 진심으로 맞서보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네요."
이렇게 말하는 누마타의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더 슬프게 와닿았다.
5.
성공한 인생만이 인생이 아니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나서는 그런 여러 인생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의미있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도 출판사 직원들, 만화가와 문하생들, 서점 직원, 독자들, 모든 주조연들의 연기가 훌륭했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데에 드는 노고를 알 수 있었으며 러브라인이 없어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또 이번에 학교에서 출판 수업을 듣고 있어서였는진 몰라도 편집자라는 직업이, 출판사라는 직장이 너무 매력적이었던. 인생에 슬럼프가 찾아온다면 코코로와 함께 쥬한슛타이를 외치며 나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기록
2018.10월 왓챠플레이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에는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좋아하는 영화를 2번, 3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그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프랑수아 롤랑 트뤼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