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도전기] '이기적 유전자' 시놉시스(4) - 줄거리
[시나리오 도전기] '이기적 유전자' 시놉시스(3) - 줄거리
◆ 시놉시스
#프롤로그
2017년 봄, 서울의 어느 한 카페
카페 문이 열리고 백팩을 맨 건장한 남성이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온다.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구식 캠코더가 들려있다.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카페 깊숙이 구석진 곳, 그를 발견한 수연이 살며시 손을 든다. 그쪽으로 다시 발길을 향하는 승찬. 밝게 인사를 건네며 수연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수연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뒤늦게서야 승찬 손에 들린 캠코더를 발견한 수연. 쓰고 있던 캡모자를 더 깊이 눌러쓰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저어... 얼굴은 찍지 말아주세요. 어제 작가님께 미리 말씀드렸는데, 익명으로 인터뷰 돕겠다고...”
“아, 아이고.. 아우... 제가 인터뷰는 처음이라서요. 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연히 그래야죠. 하긴 이런 인터뷰를 공개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죠? 하하.”
미안해하며 황급히 캠코더를 아래로 내리는 승찬. 캠코더는 수연의 검은 후드집업 아랫부분과 탁자 끄트머리를 향한 채로 고정되어있다.
#인터뷰
수연과 승찬 사이, 어색한 기운만 맴돌다 승찬의 멋쩍은 헛기침 소리가 조용한 카페에 두 어번 울려퍼진다. 아무 말 없이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빨고있는 수연. 컵 안에서는 이제 더 이상 마실 것도 남아있지 않아 얼음끼리 서로 부딪치며 잘그락 소리를 낸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좀 풀어보고자 승찬은 시덥잖은 이야깃거리를 몇 가지 던져보지만 별 반응 없는 수연. 이번엔 수연이 과거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그녀가 활동하던 시절 노래를 아는 척해본다.
“저 사실 예전에 ‘다나에’ 팬이었어요. 그 2집 노래 중에 ‘네가 있어’ 였나요? 그 노래 참 좋았는데.”
“아아... 그거. 제가 그룹 탈퇴하고 나온 노래예요. 좋더라구요, 노래.”
그들 사이 또다시 잠깐의 정적이 맴돈다. 무안함에 멋쩍게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짓는 승찬.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이번엔 수연이 고개를 들고 승찬에게 무언가를 말할 듯이 입술을 들먹이다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 저... 어떤 이야기부터 하면 될까요? 가능하면 제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 대중들한테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서요. 또 어떤 기사와 악플이 달릴까 두렵기도 하고. 익명이라곤 해도 제가 출연했던 프로그램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알지 않을까요...”
승찬은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하는 수연에게 인터뷰는 단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참고용일 뿐이라며 편안한 말투로 그녀를 안심시킨다. 덧붙여 방송에 나가게 된다면 그녀가 겪은 아픔과 5년이 지난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일의 후유증 정도의 인터뷰일 거라는 말도.
“편하게 하고 싶은 얘기부터 하세요. 자세하면 저희야 물론 좋죠. 하하. 친구한테 속 편하게 털어놓는다 생각하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수연씨 편이니까요.”
수연은 그녀가 지난 그 사건 이후 풀리지 않았던 오해로 인해 겪은 아픔과 고통을 조근조근 말하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또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지.
# 정필과의 만남 (수연의 과거 회상)
“5년 전, 2012년인가요. KNnet 방송국을 갔었어요. ‘퀸 메이커’ 메인 피디님을 만나러요...”
2012년 무더운 여름, KNnet 방송국
열여덟, 앳된 얼굴의 수연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방송국 이곳저곳을 연신 두리번거리다 KNnet 방송국 회의실 문을 발견하고는 문을 벌컥 열었다. 밝게 인사를 하려는 찰나, 혈기 높은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얼른 문을 닫아버린다. 투명한 유리문으로 보이는 정필의 모습, 상사의 불호령에 어쩔 줄을 모르며 잇따라 고개를 조아린다. 최근 도통 그럴싸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새로 기획하는 것마다 족족 조기종영이 되니, 방송국으로서는 정필이 못마땅할 수 밖에. 가뜩이나 요즘 사정까지 안 좋아진 종편 방송국 KNnet은 정필에게 결국 마지막 기회를 주고만다. 정필은 이 마지막 기회를 꼭 성공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상사가 방을 나가고, 언제 혼이 났냐는 듯 환한 미소로 수연을 반기는 정필. 수연을 자기 앞에 앉히고는 조만간 편성 예정일 본격 육성 소사이어티 예능 ‘퀸 메이커’ 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한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그의 말을 경청하는 수연. 첫 예능 출연으로 기대에 부푼 마음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필은 친구의 연줄이 있으니 수연을 무조건 대박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호탕한 목소리로 말한다. 프로듀서들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방송 열심히 하는 모습 보이면 방송 분량을 늘려줄 뿐만 아니라 KNnet의 딸, 프린세스로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말도 덧붙이며. 그럴수록 더욱 반짝이는 수연의 눈빛. 정필의 손을 잡고 업(up)된 높은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말,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연신 반복한다.
# 퀸 메이커 (수연의 과거 회상)
‘퀸 메이커’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한 줄로 요약된 설명은 이렇다. 본격 여왕 육성 소사이어티 게임 ‘퀸 메이커(Queen Maker)’. 9명의 각기 다른 개성의 여자들이 세트장 하우스에 한데 모여 동거를 시작한다. 첫방송이 되기 이전, 사전에 자신을 어필하는 소개 영상들을 예고편처럼 묶어 시청자들의 투표와 관심을 유도한다. 시청자들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신이 여왕으로 만들고 싶은 출연자의 각각의 스텟(능력치)을 투표함으로써 올려준다. rpg 육성게임을 예능 프로그램에 도입한 셈인 것이다. 9명의 출연자들은 자신이 가진 스텟으로 각각 계급을 부여받는다. 계급은 매 주 바뀌며 계급에 따라 그에 걸맞는 의상과 방, 소품, 자격, 능력 등이 함께 부여된다. 계급은 제일 높은 계급인 여왕부터 제일 낮은 계급인 하녀까지. 우승자는 프로그램이 종영되는 그 날, 여태껏 가장 많이 여왕의 자리를 차지해 그 날 여왕의 자리에 앉게 되는 단 한사람이다.
# 정필과의 갈등 (수연의 과거 회상)
“ 점점 이상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나날이 악플도 늘어갔고, 안티팬들도 불어났어요. 제 이미지는 그렇게 추락했어요. 밤에 멤버들과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방송 모니터링을 할 때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어요. 멤버들이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리더로써 그게 얼마나 팀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는 걸 알잖아요. TV에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딸 출연한다고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신 부모님이 집에서 어떤 심정으로 방송을 보고 계실지 생각만 해도 죄송했어요. 매일 밤 이불 속에서 남모르게 몰래 울어야만 했죠. 소속사 대표님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라고 했어요. 피디님이 무슨 뜻이 있으신거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혹여나 그게 노이즈마케팅을 노린 것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제 이미지가 바닥을 치는 것을 저 스스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문제였나봐요...”
첫 방송 이후 3주째까지 그녀의 인기는 ‘퀸 메이커’ 방송의 힘을 입어 더더욱 치솟았다. 광고와, 무대에서 볼 수 없던 그녀의 솔직하고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수연의 캐릭터를 잡아준건 다름 아닌 정필이다. 그녀의 첫 프로그램 촬영에서 수연은 정필을 많이 의지했고, 삼촌처럼,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가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수연이었다. 그러나 깨발랄하고 오두방정을 떨던, 한마디로 비글미가 돋보이던 그녀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안하무인에 오만과 거만의 아이콘으로 바뀌어 자리잡는다. 정필의 편집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극적이고, 화제성 짙은 방송을 찍어내기 위해 정필은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시청자들은 벌써 그녀에게 등을 돌렸고, 수연은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촬영 도중 쉬는 시간, 그녀는 세트장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정필 앞에 선다. 그리고는 솔직하게, 가감없이 정필에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한다. 프로그램 중 자신의 라이벌 구도로 놓여있는 다른 출연자가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채.... 정필은 그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서서 짹짹대는 수연은 이제 그저 딸 같은 귀여운 출연자가 아니었다. 귀찮은 골칫거리였다. 둘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고. 정필에 입에서는 차마 담지 못할 욕설까지 튀어나온다. 열이 끝까지 뻗친 수연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정필에게 울분을 토한다. 그리고 그날 밤, 사건이 터졌다. 수연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다. 그 날의 정필과 수연의 대화가 동영상 파일로 인터넷을 떠 돌고 있었다. 그것도 일부러 수연에게 불리하도록 절묘하게 악의적인 편집이 된 채로...
# 그 후에...
동영상 논란이 터졌지만, 그 때에는 이미 사전 방송 녹화를 모두 진행한 후였다. 그 영상이 떠 도는 와중에도 수연은 여전히 그렇게 추락된 이미지를 갖고 TV에 등장했다. 수연은 더 이상의 방송 활동이 불가하다. 피해도 상당했다. 결국 달랑 기사 몇 줄로 그룹 탈퇴라는 말과 함께 연예계를 떠나는 수연. 공들였던 지난 수년간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연예계에서 발을 빼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등을 돌린 수 많은 팬들, 안티 팬들, 그냥 대한민국 전국민이 수연의 적이 되어버렸다. 길거리에서 심한 욕설을 듣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갖은 저주와 멸시는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수년간 그녀를 따라다녔다.
# 예고편 편집
다시 2017년 봄, MBS 다큐멘터리국 편집실
컴컴하고 좁은 공간, 책상 위엔 큼직한 모니터 한 대만이 빛을 뿜고 있다. 모니터 옆으로 컵라면 용기와 먹다 남은 과자들이 널브러져있다. 그리고 승찬이 그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말 없이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밤 샘 작업으로 눈 밑이 퀭해진 승찬. 얼마 전 인터뷰한 수연의 동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수연의 말을 잠깐 예고편에 비출 예정이다. 수연의 요구대로 이름도, 얼굴도 모두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후드집업 아랫 부분만을 비추는 영상 위로 자막은 ‘전 걸그룹 멤버_ 김 모양’ 이 전부다. 편집을 하며 수연과의 첫만남을 잠시 떠올리는 승찬. 그녀의 모습이 딱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느닷없이 벌컥 편집실 문이 열리고 벌려진 문틈으로 강렬한 새하얀 빛이 승찬의 망막에 쏟아진다. 깜짝 놀라는 승찬. 뒤이어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고통을 호소한다. 눈 앞에 보이는건 다름아닌 선배 여(女)피디인 상아. 여러 번 뵙진 않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바닥에서 꽤나 영향력있는 피디라고 승찬은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상아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깍듯이 인사하는 승찬. 상아는 승찬을 도로 앉히곤 그의 어깨위에 팔을 올려놓고 그의 작업현황을 살펴본다. 미간을 찌푸리는 상아. 그녀는 승찬이 수연의 얼굴을 가리고 그녀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며 승찬에게 한마디 건넨다. 승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네가 윤승찬이랬나...? 여기 예능국에서 쫓겨나서 왔다고 했지? 빠져가지구. 네가 이러니까 쫓겨난거야. 그렇게 생각이 많아가지구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PD는 독해야 돼. 우리한텐 어떻게 해야 이 프로그램이 흥할까. 어떻게 화제를 불러일으킬지가 우선이라고. 쯧쯧.”
상아가 나간 후, 승찬은 잠시 모니터 화면을 아무 생각 없이 공허하게 바라본다. 부들부들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승찬의 속에서 들끓어오른다. 서둘러 기존의 영상을 승찬이 카페에 들어올 때 잠시 찍었던, 확연히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는 영상으로 대체한다. 그리고는 자막을 고치는 승찬. 백스페이스 탁.탁.탁.
# 에필로그
2017년 초여름, 정필의 집
흔히 볼 수 있는 32평의 평범한 아파트 가정집. 정필과 정필의 아내, 7살난 어린 딸이 살고 있다. 거실에는 새까만 LED TV와 약간 헤진 밤갈색의 가죽 소파가 마주하고 있고, 커다란 텔레비전 옆 선반 위에는 환하게 웃고있는 그의 딸 사진액자로 가득하다. 그 위로 보이는 따뜻한 느낌의 벽지 위에 걸린 중간 크기의 화목한 가족사진. 어느 평일 오후 10시. 거실 소파에 둘러 앉아 사과를 깎아먹으며 TV를 보고 있는 정필의 가족이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를 끝맺는 아나운서의 마무리 멘트가 흘러나오고 광고가 시작된다. 수연을 먼저 알아보고 호들갑 떠는 정필의 아내. 정필은 아내가 주는 사과를 받아들고 시선을 텔레비전 속에 고정시킨다. 눈치도 없이 자꾸만 정필의 다리에 안기는 그의 일곱살바기 딸. 정필의 눈빛에 왠지 모를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 어머머머 저 못된 것. 쟤 걔 맞잖아, 여보. 내가 쟤 때문에 우리가족 폭삭 망할 걸 생각하면 아주... 그래도 방송은 잘 돼서 다행이었지만,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구. 이제 와서 불쌍한척 동정심 좀 얻어보겠다 이건가? 어휴. ”
“왜? 저 언니가 왜 못 됐어?”
이번엔 정필의 아내 다리 위에 앉아 안기는 딸. 여전히 정필의 시선은 수연에게 고정돼있다.
“여보, 이거 봐봐. 역시 좋은 꼴은 못 봐, 얘도.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정필의 아내가 그에게 휴대전화를 들이민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갖은 악플들과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 정필은 한숨을 내쉰다. 다큐멘터리 예고편은 진즉에 지나갔음에도 계속 수연에 대한 이야기를 궁시렁거리는 정필의 아내.
“수연이 잘못한 거 하나 없어. 다 내 잘못이지. 다 내 욕심이야....”
“응? 뭐라고?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네가 이제 잘 때가 다 됐구나.”
정필의 아내는 그의 혼잣말을 듣지 못한 채 잠투정 부리는 그녀의 딸을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그때 그 일 생각에 빠져있는 정필. 정필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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