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마무리하며
벌써 12월이다. 러시아의 생활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오기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그동안 꽤 많이 있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물론 다 한국인들이다), 건강해지려고 러시아에서까지 피티도 받았다. 또 정말 가고 싶었지만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러시아 항공 운항이 아예 중단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의 단념하고 있던 조지아 여행도 어쩌다 보니 갈 수 있었고, 모스크바와 다른 근교 도시도 잠깐이지만 다녀왔다. 게다가 러시아 텔레비전 채널에도 출연하는 영광 아닌 영광도 있었다.
여기서 지내는 내내 이 작고 지루한 도시가 싫다고 툴툴거리긴 했어도, 막상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오니 아쉽기도 하고 미련도 살짝 남는다. 이제 러시아어로 뭘 물어봐도 쫄지 않고 뭐라도 좀 대답하게 됐는데, 벌써 돌아가야 한다니. 왠지 한 학기 더 다니면 러시아어가 훨씬 늘 것도 같지만, 일단 그 만한 돈도 없고 어차피 성실하지 않을 나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여행도 가게 됐다. 이렇게 오래, 그것도 혼자 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생일도, 새해도 홀로 맞이하게 될 예정이라 무척 기대가 되면서도 타국에서 맞는 생일과 새해가 외로울 것 같아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이기도 하다. 아마 여행 내내 크리스마스와 새해 분위기의 향연이 이어질 것 같다. 과연 내가 수많은 커플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외롭지 않고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3박 - 체코 프라하 3박 - 폴란드 바르샤바 3박 - 에스토니아 탈린 2박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3박 - 러시아 모스크바 3박, 이렇게 총 17박 18일의 여정이다. (아, 마지막 한국 돌아오면서 이스탄불 20시간 경유까지.) 처음엔 한국에서 끊는 항공권보다 훨씬 싸니까 당연히 여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게 무척 설렜는데, 막상 닥치니 이것마저 귀찮아졌다. 여행 자금 아껴서 차라리 한국 가서 사고 싶은 거 사고 몇 달간 넉넉하게 지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항공권과 숙소를 다 예약해버렸는걸. 아무쪼록 이곳에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