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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한동일

  • 2019.08.21 02:24
  • Art & Culture/책
글 작성자: _J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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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한동일 


★★★◐☆ (3.5/5)


 

  • 제목 : 라틴어 수업

  • 저자 : 한동일

  • 출판사 : 흐름출판

  • 출간일 : 2017.06.30

  • 페이지 수 : 312쪽 

  • 독서시작일 : 2019.08.07

  • 독서종료일 : 2019.08.18 (리디셀렉트)

 


나의 생각 


이 책이 한창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며 유행이었을 때, 나도 그 흐름에 편승해 보겠다고 학교 도서관에서 한번 빌려 보았다가 수업 듣고 과제하기 바쁜 탓에 결국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서점에서 표지를 볼 때마다 늘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마침 리디셀렉트에 올라와 읽기 시작했다.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곤 적잖이 실망했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그럴싸한 제목을 가진 그냥 자기계발서였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였나, 문득 자기계발서는 이미 잘난 사람들, 혹은 잘나고 싶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미화하고 과시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읽었던 책 하나가 상당히 별로였던 같지만, 그때부터 였다. 소설책만 읽지말고 이런 것들도 읽으라며 공부 잘하는 법, 성공하는 법 따위가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사다주는 엄마가 너무 싫었고, 난 지금도 여전히 자기계발서를 읽을 바엔 차라리 문학이나 인문/사회 도서를 한 권 더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매 챕터마다 꼭 교훈을 주려는 듯한 마무리가 별로라 느껴졌는데, 계속 읽다보니 주제로 나오는 라틴어 보다 챕터 끝의 교훈보다, '공부'라는 것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도 없던 언어를 전공하게 된 새내기 시절, 대학생활에 들뜨고 설렜던 것도 잠시, 곧 졸업 후에 쓸지 안 쓸지도 모를 이 언어와 재미도 없고 별로 유익하지도 않은 교양 수업들을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중에 써 먹을 수 있는 기술 같은걸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4학년을 목전에 두고서야 여태 강의를 들었던 것들이 그래도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드는데,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있다.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수업이 지향하는 지점입니다.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마냥 하기 싫고 쓸데 없다고 여겼던 공부가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에 특히 요즘 공감하고 있다. 강의를 좀 더 열심히 듣고, 교수님들이 읽으라는 책 좀 읽으며 상식을 좀 쌓아놓을걸,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이 책을 보고싶었던 건 저자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기도 했다. 동양인 최초의 바티칸 변호사라니... 라틴어 뿐만 아니라 각종 유럽어와 법 공부를 통달한 사람이니 정말 지겹도록 공부만 했겠지 싶은데, 공부에 대한, 특히 언어 공부에 대한 저자만의 철학이 엿보이는 책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인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끈기라면 웬만한 공부들은 능히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다른 학문을 얕보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책에 나온 라틴어의 격변화를 보니 러시아어의 격변화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뭔가를 외울 일이 있으면 라틴어의 격변화를 떠올려야지.



기록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위대한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수업이 지향하는 지점입니다.


특히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 척합니다. 자신의 약점과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약점이나 단점과 직면했을 때 시선을 돌려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불평해요. 특히 부모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불평하는 것은 가장 하기 쉬운 선택입니다. 양심상 결코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덜 아픈 일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 대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어제의 메리툼이 오늘의 데펙투스가 되고, 오늘의 데펙투스가 내일의 메리툼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죠. 우리는 무엇 하나 명확히 답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툼이고 데펙투스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인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끈기라면 웬만한 공부들은 능히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다른 학문을 얕보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놀았다’라고 말하며 자책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논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대부분 공부를 시작하면서 ‘열심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또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그 ‘열심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단지 스스로 생각한 성과나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정말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나의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생활패턴과 성향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실패할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의기소침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어느 시간에 더 집중을 잘하고 어느 시간에 집중을 못하는지, 또 어떨 때 감정적으로 쉽게 무너지는지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잠은 적어도 얼마만큼은 자야 집중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와 같은 사소한 것도 알아야 합니다.


공부는 자동판매기가 아니었어요. 당장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꾸준히 체계적으로 학습량을 쌓은 두뇌는 어느 때부터 ‘화수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공부는 성숙을 배워가는 좋은 과정입니다.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 중에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어요.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면 자신의 한계를 보기도 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지독한 나, 열등한 나와 조우하게 되고요.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어찌 보면 성경도 제자들이 스승인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이해한 것을 제자의 제자에게, 또 그 제자에게 전달하여 기록된 학생들의 수업 노트였을 겁니다.


저는 라틴어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 ‘도 우트 데스’ 하나만큼은 꼭 기억해두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 미국과 유럽 지역의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면 어떤 협상을 마치고 서로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을 때 이 라틴어 문장을 툭 던져보라고 권합니다. 아마 상대의 눈이 휘둥그레질지 몰라요. 이건 마치 외국인이 사자성어를 써가며 우리에게 인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실제로 이 라틴어 수업을 들었던 한 제자가 졸업 후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외국인 파트너에게 이 말을 했더니 정말 놀라워했다고 전해온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면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매듭을 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가보는 연습을 해보라고요. 공부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득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회로 나가면 언제든 대체로 내가 처한 상황은 불리합니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보다 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를 치켜세우려는 사람보다 깎아내리려는 사람이 더 많죠.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 나마저 나를 미워한다면 더 이상 누가 날 사랑하겠습니까? 나마저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무언가를 이뤘지만 나는 아직 눈에 띄게 이룬 것이 없다면, 그와 내가 걷는 걸음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나와 그가 가는 길이 다를 뿐이죠.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angulo cum libro.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 독일의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


이탈리아어로 티라미수는 ‘끌어당기다, 잡아끌다’라는 의미의 ‘티라레tirare’ 동사와 방향을 가르키는 ‘위에, 위로’를 의미하는 전치사 ‘수su’의 합성어로 ‘위로 끌어올리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티라미수의 이름은 이 케이크를 먹으면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언어 학습은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책상에 앉아서 바로 공부에 돌입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몸 풀기’ 차원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게 언어 공부일 뿐이고요. 누군가에게는 책을 읽거나 혹은 단순한 산수 문제를 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 자기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가는 첫 단계가 진정한 공부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가 과연 나에게 상처를 주었나?’ 하고요.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예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사막을 여행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막 한가운데 섰을 때 인간의 시선이나 생각을 가로막는 인위적인 장애물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막에서 인간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은 절대적인 나약함 속에서 절대 자연의 무한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만 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18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장 34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e sufficit diei malitia sua.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제가 인간인 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한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꿈을 꿉니다. 그래서 ‘희망’이겠지만 말입니다.





남의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다 - 소크라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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