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스노다르 이야기] 3. 러시아에서 식사 해결하기(2)
[크라스노다르 이야기]
3. 러시아에서 식사 해결하기(2)
기숙사에서 밥해 먹기
수업은 거의 오전 중에 끝났다. 한국과 6시간이나 시차가 나고 인터넷도 느려서 하루가 굉장히 긴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 하루는 대부분 요리로 시작해서 요리로 끝나곤 했다. 일상에서 식(食)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전에 수업을 듣고, 장을 보고, 점심을 해 먹고, 설거지하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저녁 준비를 하고, 또 설거지를 하고, 내일 뭐를 해 먹을지 생각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여태껏 부엌에서 각 잡고 요리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터라 뭘 만들든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밥솥으로도 몇 번 밥해 먹어 본 적 없던 내가 냄비밥의 달인이 됐다. 인터넷에 나온 대로 따라 했는데, 가스레인지의 성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초반의 실패 몇 번은 피할 수 없었다. 2~3번 실패하고 나름 요령이 생겨 그다음부터는 아주 잘해 먹었다. 쌀은 아시아 쌀 찾을 필요 없이 그냥 쿠반스키 쌀을 쓰면 됐다. 한국 쌀이랑 그냥 똑같은 맛이었다. 저렇게 한 4~5인분 만들어 소분해 놓고, 냉동실에 얼려서 두고두고 햇반처럼 꺼내먹으면 됐다. 기숙사에 전기밥솥이 있긴 했지만 그건 사실상 중국인 학생들의 전유물이었고, 위생이 우려돼 사용하기도 싫었다. 가끔씩 냄비밥 하다가 누룽지를 득템하는 날도 있었으니, 그냥 냄비밥이 짱이다.
이런 식으로 자주 해 먹었다. 지극히 평범한 내 식단들. 큰 마트에서 비비고 만두를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마트에서 비비고 만두와 치킨너겟을 사서 주로 먹었다. 한국에서 자취할 때나 러시아에서나 냉동식품 애용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룸메랑 삼겹살을 구해다가 수육을 해 먹었다. 돼지 잡내를 빼준다고 저렇게 맥주랑 사과랑 양파랑 넣어서 푹 삶았다. 생각보다 간단했던 수육 만들기.
상추에 밥이랑 고기, 고추장까지 올려서 냠냠.
상추를 심어서 자급자족하겠다 다짐했는데, 나의 상추 키우기는 처참히 실패했다. 물도 열심히 주고 햇빛도 잘 쬐였는데 왜지...
샤슬릭코프에서 미친 듯이 짠 연어에 크게 실망하고, 룸메와 마트에서 연어를 구입해 직접 요리해 먹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 연어도 엄청나게 짰다. 샤슬릭코프에서만큼은 아니었지만, 먹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식당에서도 다른 건 그렇게 짜다고 못 느꼈는데, 얘네는 원래 이렇게 생선을 짜게 먹나 보다.
룸메의 히든카드 한국에서 가져온 부대찌개 분말이었나, 떡볶이 분말이었나로 이렇게 부대찌개도 해 먹었다.
이 날은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저렇게 밀가루 반죽을 해 수제비 떡볶이를 먹었다. 우리는 밀가루로 열심히 반죽했는데, 타브리스 마트에서 밀가루 반죽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이 날도 룸메의 떡볶이 분말을 사용했다. 룸메 없었으면 정말 어쩔 뻔했나 모른다.
이전에 누군가가 두고간 화투를 발견했다. 룸메와 함께 밥해 먹은 후에는 설거지거리를 두고 항상 맞고를 쳤는데, 이것도 기숙사 생활의 또 하나의 묘미였다. 처음에 화투 치는 모양새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는데, 나중 가서는 경북대 친구들과도 같이 고스톱도 치고,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게임 방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둘 다 화투의 고수가 되었다.
내 주식은 참치마요 덮밥과 제육볶음이었다. 그냥 가장 쉽고 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저 제육볶음에 대해선 또 비하인드가 있다.
뚜둥. 내 팔뚝만 한 거대한 돼지고기다. 학교 앞 마트에서 다 썰려있는 고기를 파는 것도 모르고, 나는 오케이 마트에 가서 샀다. 거기는 이렇게만 팔았던 것 같다. 정육코너 아저씨에게 돼지 앞다리 살 주세요 했더니, 이렇게 줬다. 잘라줄 수 없냐니까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안 살래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저씨는 내게 저렇게 포장된 돼지고기를 안겨줬다. 구매를 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기숙사에서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해체하는 작업을 해야 했고, 2시간은 걸린 것 같다. 돼지고기로 거의 회를 떴다.
2시간 걸려 완성한 돼지고기로 회 뜨기! 썰려있지 않은 대신 가격은 매~우 저렴했고, 양도 엄~청 많았다. 돼지고기를 볶고 나서 다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놓고 그때그때 꺼내 먹었는데, 8인분 정도가 나왔다. 어마어마했다.
제육볶음에 김, 그리고 계란찜. 완벽한 점심식사
한국에서 라면을 4개 정도 들고 왔다. 내 사랑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빔면을 먹는 점심시간은 힐링 그 자체.
마트에 소면을 팔고 있어서, 소면을 이용한 요리도 자주 해 먹었다. 박막례 할머니 비빔국수에 화사의 간장국수 비법을 참고한 국수다. 난 분명 처음 먹어보는데 이미 알고 있는 맛이다. 그냥 엄청 맛있다. 한국에서 자취하면서 또 생각나서 만들어 먹어봤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났다. 면이 좀 다른 느낌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국 소면보다 좀 더 탱글탱글한 느낌이었는데 저게 더 맛있다. 경북대 친구가 멸치다시다를 몇 개 줘서 그걸로 잔치국수도 해 먹었다. 한국인 친구들 없었으면 나 진짜 밥 어떻게 해 먹고 다녔을지... 경북대 친구들이 멸치다시다도 주고, 고춧가루도 주고, 참기름도 빌려줬다!! 고춧가루, 고추장, 참기름은 진짜 필수템이었지만, 난 챙겨가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정말 고마웠다.
이것 역시 룸메의 감자전 믹스를 사용해 만든 감자전... 난 정말 들고 간 게 뭐지.
반찬도 만들어 먹었다. 가지볶음!
타브리스에서 두부를 겟했다. 러시아에서 구할 수 있는 두부는 우리나라의 두부와는 조금 다르다. 더 딱딱하다. 두부는 치즈코너에 있고, Сыр соевый 치즈로 만든 두부라고 써 있다. 두부를 한 번도 치즈류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신기했다. 오케이 마트에서 순두부도 발견했다. 일본 제품이었는데 주먹만 한 게 200루블로 엄청 비쌌다. 그래도 궁금해서 한번 사 먹어봤는데, 우유맛도 나고 좀 더 흐물거리는 게 아무튼 별로였다.
구입한 두부와 칵테일 새우로 칠리 두부 새우 강정도 만들었고, 두부 간장 조림도 해 봤다! 내 인생에서 요리를 가장 많이 했던 시기였다.
밥해 먹기 귀찮을 때는 샐러드도 자주 해 먹었다. 그냥 채소들 때려 넣고 계란만 삶아 넣으면 되니, 간편 그 자체였다. 하지만 매번 이것만 해 먹을 수는 없는일.
질릴 때마다 매번 다른 재료들을 넣었다. 사과, 토마토, 양파, 콘 통조림, 리코타 치즈 등등.
한 번은 코울슬로도 해 먹었다. 이런 말 하긴 민망하지만, 내가 먹어본 코울슬로 중에 단연 으뜸이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보고 다시 만들어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손이 굉장히 많이 간다. 당근이랑 양배추 써는 데만 진짜 하루 종일 걸린 듯하다. 그냥 KFC에서 사 먹고 말지.
중국 친구들의 초대로 다 같이 훠거를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같이 마트와 시장에 가서 재료를 구입했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중국인들이 확실히 손이 크긴 하다. 가격도 보지 않고, 바구니에 막 담는 모습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자기들이 재료비는 다 살 테니 기다리라는 친구들을 만류하고 더치페이할 거라고 말한 내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저 한 끼가 밖에서 사 먹는 외식값의 곱절로 나오고 말았다. 난 그래도 먹을만했는데, 룸메는 입에 안 맞았는지 영 먹지 못했다. 중국인 친구들은 그래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 너네들이 즐거웠음 됐어...
이 날은 갑자기 찾아온 러시아 친구들이 우리에게 블린을 만들어줬던 날이다. 그래서 기숙사에 함께 살고 있던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친구들도 음식을 내왔다. 중국 친구들의 콜라 치킨과, 일본 친구들의 디저트다. 같이 살던 경북대 친구들은 감자전과 참치마요를 곁들인 모닝빵을 준비했다. 나는 정말로 다 차려진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얹었다가, 미안해져서 급하게 계란찜을 만들어 내왔다.
룸메와 함께 버디들을 방으로 초대하면서 우리나라 음식을 대접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 버디들 중 한 친구의 아파트에 가서 저렇게 러시아 음식을 먹게 되었다! 저것이 바로 그 치킨누들숲. 이런 게 진짜 가정식인가, 식당에서 사 먹던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 방에 초대했을 때 우리가 만든 호박전을 보고, 러시아 애들이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해 먹는 거야!' 라고 했었는데, 진짜로 호박전을 만들어줄 줄이야. 우리나라의 호박전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그냥 계란물 풀어서 만든다면, 얘네는 계란이 아니라 핫케이크 반죽에다 묻혀서 호박전을 해 줬다. 좀 더 달짝지근했는데, 핫케이크나 블린에 환장하는 나는 이게 더 취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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