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스노다르 이야기] 2. 쿠반국립대에서 생활하기(1)
[크라스노다르 이야기]
2. 쿠반국립대에서 생활하기(1)
1. 기숙사
내가 살던 기숙사는 общежитие No.4 건물의 2층이었다. 한 층에 3개의 섹션이 있고, 한 섹션엔 공용 욕실과 화장실 각각 하나, 그리고 2-3인실 4개가 있다. 8여 명의 학생들이 한 화장실과 욕실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3개 섹션의 학생들, 총 25명 정도가 그 층에 있는 부엌과 세탁실을 함께 사용한다.
처음에는 이 기숙사가 마음에 안 들었다. 같은 섹션이 아니더라도 남자들과 한 층에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고 불편했다. 하지만 살다보니 이 학교에 있는 기숙사 중 내가 머무는 기숙사가 제일 좋은 곳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기숙사 구조가 독특해서 한 번쯤은 다른 층을 구경 가는 것도 재밌다. 다른 기숙사층을 가보면 제대로 된 부엌과 세탁실을 갖춘 기숙사는 이곳뿐이란 걸 알게 된다.
기숙사 1층 로비. 크리스마스를 맞아 охрана와 학생들이 장식을 해 놓은 모습이다.
내가 쓰던 방! 3인실이었지만, 거의 둘이서 쓰다시피 했다. 룸메가 한국인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이 기숙사의 가장 큰 흠은 바퀴벌레다. 러시아에 처음 와서 익힌 첫 단어도 바로 바퀴벌레 таракан이었다. 어마무시할 정도로 많은건 아니었지만 바퀴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의 바퀴벌레보다 사이즈가 작았다는 건데, 한국 바퀴벌레 사이즈였으면 절대 거기서 못 살았을 거다. 러시아 가서 담력만 세져서, 한국에서 벌레 하나 못 죽이던 내가 여기서는 바퀴벌레를 덥석덥석 잡을 수 있게 됐다.
부엌이다. 방에서는 종종 바퀴벌레가 목격되는 정도라면, 부엌에서 바퀴벌레는 그냥 일상이다. 처음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지만, 나중되니 바퀴벌레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 주며 함께 생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종 방역하는 분이 와서 약을 뿌리고 갔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유학생들과는 이곳에서 인사를 하고 말을 트면서 친해지게 된다. 안녕? 오늘 뭐했어? 뭐 만들어? 이런 일상대화들. 다른 유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으면 바퀴벌레와 함께있는 걸 감수하면서 그냥 계속 부엌에 있으면서 말 걸면 된다. 냉장고는 3개가 있었는데 공용이다. 그래서 냉장고 도난 사건도 몇 번 있었다.
경북대 친구들이 추천한 현지 바퀴벌레 약. 그 친구들도 이전에 쿠반대에 왔던 선배들에게 추천받은 것이라니 나름 검증된 약이다.
세탁실이다. 25명 정도 되는 인원에 세탁기가 고작 하나뿐이라 세탁기 경쟁이 꽤 치열하다. 막판에 사고를 하나 쳤다. 세탁기를 고장 냈다. 원래는 무료로 수리를 해줬는데, 세탁기가 고장 난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는 수리비를 받겠다고 했다. 재수 없게도 내가 그 타이밍에 일을 낸 것이다. 세탁기남이 돈을 얼마나 부를까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5만원 이상 부르면 내가 잘못한 거 아니라고, 나 돈 못 낸다고 배 째려고 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세탁기남은 400루블(약 7,000원)을 불렀다! 세탁기남이 세탁기와 씨름한 3시간 반의 노고는 고작 400루블 어치였다. 말도 안 되는 인건비가 이해는 안 갔지만, 나로선 정말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저 세탁기 정말 이상하다. 실용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위험하다. 여지껏 한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세탁기였다.
세탁기남이 수리기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탁기남도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 세탁기남과 얘기 중에 중국 남자애가 나를 급하게 부르길래 가보니, 세탁기남이 성매매를 일삼고 다니니 같이 놀지 말라는 거였다.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아무튼 세탁기남은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
루스끼 끌룹이다. 공부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고, 티타임도 가졌다. 필기노트, 토익책 등 오래전에 이곳에 머물렀던 한국인들의 흔적들도 발견했다.
루스끼 끌룹에서 경북대 친구와 격변화 뿌수기
2. 수업
쿠반대학교에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레벨 테스트를 본다. 대부분 문법 문제다. 그렇게 반이 배정되면, 시간표가 짜여진다.
나는 수공강이었다. 수업이 적긴 했어도, 4시간 반 연속으로 러시아어 수업을 듣는 날은 정말 힘들었다.
대학교 수업은 пара다. урок은 초, 중, 고 수업에서만 쓴다고 한다. урок은 50분 수업이고, пара는 1시간 30분 수업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러시아인 친구가 알려줬다. 그건 그렇다지만, 수업 시간표는 꼭 우리나라 고등학생 시간표 같다. 오전 8시 시작해서 오후 5시 넘어서 끝나는 게 일반적이고, 과별로 시간표가 짜여져서 나온다고 했다.
내가 수업을 들었던 교실들!
노는 게 반 이상이었지만, 나름 공부도 하긴 했다.
한번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러시아 학생들이 와서 일일 선생님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부모님께 보낼 카드를 만들고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뭘 할 때마다 예쁘다, 잘했다 너무 과한 칭찬을 해줘서 마치 어버이날에 카드 쓰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한국으로 편지를 부치진 않았다. 우체국까지 갔었지만 비용을 듣고 부치지 않았다. 그 돈으로 그냥 밥 한 끼 사 먹는 게 더 나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걸 더 좋아했을 거다.
3. 도서관
이 학교는 정말 신기하다. 일단 학교를 들어갈 때부터 통행증 пропуск를 실물로 보여주고 다녀야 되는 것도 신기한데, 도서관은 더 그렇다. 줄을 서서 도서관에 입장해서는 내가 빌리고자 하는 책을 사서한테 말을 하면 사서가 찾아서 가져다준다. 가져다주는데도 한참 걸린다. 그리고 학생증에 뭔가를 적고, 또 무슨 종이에 내 정보를 적고, 책에도 또 뭔가를 적는다. 우리나라 대학교 도서관들 돌아다니다 보면 아주 오래된 책들 뒷면에 80,90년대 학번들의 대출기록이 적힌 카드가 꽂혀있는 걸 종종 볼 수 있는데, 여기 시스템이 그것과 비슷한 것 같다. 전산화, 디지털화 좀 하면 안 되나. 언제까지 손으로 쓰고 있을 건지. 한국인 입장에선 정말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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