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자작소설] 고삼
[고1 자작소설] 고삼
1.
노크식 볼펜을 손에 쥔 그가 연신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나를 빤히 응시했다. 딸깍. 하고 방 안을 울리며 튕겨진 스프링 소리는 숨통을 조여왔고, 나를 둘러싼 이 방의 공기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몸통을 찔러댔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조차 없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내 약점을 속속들이 드러내어 독설을 퍼부을 것이 뻔했다. 이제 막 3분을 지나고있던 고통스러운 침묵이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깨졌다.
탁.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쓴다고?"
"J대요."
그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고, 순간의 침묵은 미칠듯한 불안감을 만들어냈다
"무슨과?"
"사회학과..."
그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그리 길게 한숨 쉬지않아도 이미 알고있었다. 붉은 글씨로 '위험' 이라고 떡하니 써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J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J대 밑으로는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겠는걸 어쩌나.
"D대 써"
"예?"
"D대 사회학과 쓰라고."
낮게 깔린 위협적인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D대는 서울 중상위 대학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흔히 말하는 인서울을 목표로 하는 나같이 애매모호한 성적군의 아이들에게 으레 권하는 대학이었다. 그는 얼굴에 억지미소를 띠운채 온화한 말투로 나를 설득하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책상 서랍을 뒤적이다 무언가를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D대 팜플릿이었다.
"J대는... 너도 어느정도 알겠지만 지금 네 성적으로는 무리야. D대 써. J대에 못미치는건 사실이지만 D대도 나쁘지는 않다? 요즘 떠오르는 주력 대학 중에 하나.... 어쩌면 장학금도...."
앞에서 장학금이니 뭐니하고 열심히 떠들어댔지만 귓전을 잠깐 맴돌다 흩어질 뿐이었다. 애초에 귀담아듣지도않았다. 뻔뻔하다고 해도 좋고, 말도 안되는 똥고집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D대는, 아무래도 아니었다.
"저 그래도 J대 한번만 써보면 안될까요?"
"거 참"
옆테이블에서 면담을 막 끝내고 나온 옆반 담임이 볼펜으로 내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인석아, 그러게 진즉에 공부 좀 하지그랬어. 괜히 진땀 빼지 말고 선생님말 들어. 그래도 김 선생님 말 들은 놈들 중에 대학 못 간 녀석은 없었어."
그는 한 쪽 어깨에 양복마이를 대충 걸치며 말했다. 그는 고갯짓으로 담임과 인사를 나누고는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담임은 내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J대 쓸거야?"
"......."
"됐다. 가 봐. 난 아직 너말고도 세 명이나 더 남았다고. 내일 점심시간에나 다시 와."
"저어. 선생님."
교무실을 나가기 직전, 나지막하게 담임을 불렀다.
그는 막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뭐, 또 왜!."
나를 설득시키려던 좀 전의 온화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는 대뜸 버럭하고 신경질을 냈다.
"K대 심리학과는 무리일까요?"
"뭐어? K대? 헛소리 집어치우고 공부나 해. 새끼야."
담임은 어이없어하며 담배를 집고있던 손을 머리위로 올려 때리는 시늉을 내었다. 내가 돌아섬과 동시에 뒤에서는 라이터로 불을켜는 소리가 들렸다.
2.
학습실에 돌아와 앉으니 기력이 다 빠져 기진맥진했다. 면담 한 번 받는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기지개를 펴며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을 돌아봤다. 아차 싶었다. 칸막이 두칸 건너편은 먼지하나 털끝하나 없이 깨끗한 채로 비어있었다. 누군가가 내 양 어깨를 덥썩 잡았다.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깜짝이야. 내가 더 놀랐잖아. 뭐 귀신이라도 봤어?"
부반장 경미였다. 이름만 여자지 왈가닥스럽고 푼수같은것이 하는 짓으로 봐선 남자애들과 다를바 없었다.
"방금 면담하고 온거 맞지? 담임 완전 짜증나지 않냐. 너한테도 D대 가라 그러든?"
"어. 어떻게알았어?"
경미는 한숨을 푹 내 쉬고 책상 옆 칸막이에 기대섰다.
"하여간 그럴줄알았어. 나한테도 D대 가라더라. 오죽하면 선배들이 D대바라기라고 불렀겠냐고. 아는 대학이 D대 밖에 없댄다.
아, 너 옆옆자리. 저 자리 이동희 자리 맞지? 엊그제 걔네 부모님이 오셔서 짐 싹 다 빼가시던데, 수능 66일 남았는데 이제와서 전학이라도 가는건지 참. 뭐 아는 거 없어? 너 동희랑 친했잖아."
"어...어?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 맞다, 승수랑 종훈이도 어제부터 안보이더라. 혹시 이것들 작당하고 어디 놀러간거아냐? 근데 넌 왜 빠졌냐. 너 설마 거기서 알게모르게 왕따인거 아니야? 큭큭"
자습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경미는 그렇게 혼자 시덥잖은 수다를 떨다 돌아갔다. 칸막이 두 칸 옆, 동희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혹시 담임이 동희에게도 D대를 권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종이 쳤고, 종이 울림과 동시에 나는 책장 깊숙한 곳에 동희를 밀어넣으며 수능특강을 펼쳐들었다. 페이스를 잃어선 안된다. 나는. 수험생이다.
3.
사인이 뭐래요?
뭐긴 뭐겠어요. 에휴, 지 방에서 목매달아 죽었다지 뭐예요.
어머머머. 상심이 크겠어요. 아직 저렇게 젊은데, 아들이 먼저 가버렸으니.
그러게 말이에요. 애 아빠도 교수고 누나들도 명문대 생이라던데 어쩌다가 쯧쯧.
원래 그런 집 애들이 더 한 법이잖아요.
어머, 이 사람도. 다 듣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 사진, 일학년때 우리 넷이서 이미지 사진을 찍으러갔다가 입학식때 제출한 사진이 못나왔다며 동희 혼자 다시 찍은 증명사진이었다. 이 때 종훈이와 내가 동희를 웃겨보려고 얼마나 애를썼는지 모른다. 자기는 정색을 하고있을 때가 가장 멋있다며 무표정을 고수하던 동희 앞에서 우리는 돌사진을 찍는 아기를 달래는것 마냥 동희를 웃기기에 힘썼다. 동희는 사진이 못나왔다고 투덜거렸지만, 역시 동희는 웃는게 예뻤다. 이 사진이 이렇게 쓰이게 될 줄, 동희는 알고 있었을까.
돌아서 나가려는 차에 동희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꾸벅 하고 인사를 드렸다. 어린 시절, 동희네 집을 오고가며 종종 뵀었던 아저씨는 우리 아빠와는 다르게 항상 검은 양복을 입고 계셨다. 그래서그런지 아저씨는 언제나 근엄하고 기품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서 계신 아저씨에게선 그때의 근엄함은 간데 없고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만이 느껴졌다. 눈가의 그을음과 거뭇거뭇한 수염 때문에 그의 얼굴에 더 그늘이 져보였다. 가련한 아버지.
아저씨는 그의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내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정우.. 정우 맞지?"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자신이 동희를 죽인 죄인이라며 흐느꼈다. 손등 위로 그의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저씨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동희처럼만은 되지 말라며 당부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며, 우리는 이제 겨우 인생의 수많은 벽들 중의 하나를 넘고있을 뿐이라면서. 왜인지 아저씨는 내게 동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코가 시큰거렸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4.
바깥은 선선했다. 지난주까지만해도 극심한 더위로 세상사람들을 괴롭혔던 여름이 언제 그랬냐는듯 시원한 바람을 몰고왔다. 앞으로 두 달 남짓. 장례식장을 나오며 동희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는 동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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